[아침 햇발] 위험한 불장난 / 여현호

입력 2016. 2. 11. 19:26 수정 2016. 2. 1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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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굴레 늑(勒)’ 자를 쓴 늑약(勒約)인 까닭은 말 그대로 억지로 맺은 조약이기 때문이다. 강압으로 주권을 일본에 넘길 수밖에 없었던 ‘외통’은 진작에 예정돼 있었다. 주변국 관계에선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 청과 러시아는 일본에 패한 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과 1905년 9월 포츠머스 조약으로 각각 한반도에서 후퇴했다. 미국도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 터였다. 조선으로선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다.

2016년의 한국도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다. 이번엔 한국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 핵실험과 로켓 발사의 대응책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 협의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대북 제재라지만 함의와 파장은 그 이상이다.

사드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 혹은 러시아와 관련된 문제다. 로켓 기술을 바꾼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사드와 무관함은 국방부도 확인했다. 북한의 저고도 단거리 미사일이나 장사정포 공격에 사드의 고고도 방어 역량은 무용지물이기 십상이다. 북한 때문에 사드를 배치한다는 말은 그래서 공공연한 기만이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략자원이라는 게 솔직한 답이다. 정부가 사드 배치를 꺼낸 것도 북한 제재에 중국을 끌어들이려는 대중국 압박용이었다. 중국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애초 그런 발상 자체가 순진했던 것이겠다.

지금 흘러가는 대로 사드 배치가 기정사실이 되면 제재 동참이건 협상 유도건 물 건너가고, 그동안 공들였던 중국과는 척을 지게 된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냉전식 대결구도가 현실화하고 제1교역국인 중국이 등을 돌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로 인한 경제적·안보적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게 옴짝달싹도 못하게 될 때의 손익이라도 계산하고 사드 카드를 꺼낸 것일까?

무모한 불장난은 또 있다. 정부는 핵·미사일 개발에 들어갈 돈줄 차단을 위해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식량난에 허덕이던 20년 전 폐쇄경제 시대의 북한에나 내놓을 발상이다. 2014년 북한의 교역규모는 10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유입되는 연간 1억달러의 현금을 끊는다고 북한이 못 견디고 체제유지에 사활적인 핵을 포기하리라고 기대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그보다, 개성공단 포기는 군사조처를 제외하면 남쪽으로선 최후의 카드다. 남북관계의 마지막 안전판을 스스로 없앤 것이기도 하거니와 북한을 압박하려 해도 더 이상의 선택이 없게 된다는 얘기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때일까? 이후엔 물리적 대결과 긴장 고조만 남게 된다는 계산은 했을까?

여현호 논설위원

상식으로 설명하기 힘든 결정이 내려졌다면 답은 달리 찾아야 한다. 결정구조가 비정상이거나 결정권자가 그 의미를 미처 다 몰랐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엄청난 사고, 큰 위험이다. 알면서 혹은 짐작하면서 다른 이유로 ‘과도한’ 조처를 강행했을 수도 있겠다. 사드나 개성공단이 제재용이라기엔 적합성도 실효성도 없으니 결국 국내 정치 쪽으로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다. 그게 사실이면 여당의 승리가 뻔히 예상되는 두 달 앞의 총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엔 걸려 있는 문제가 크다. 그보다는 남북대결의 프레임으로 나라 전체를 되돌려 수십년 전 방식으로 뜯어고치려는 것일 수 있다. 어느 경우에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장난이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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