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소인국의 한 풍경

박정호 2016. 9. 2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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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
전시장에 들어서니 김광석의 ‘나의 노래’가 들린다. 올해 타계 20년을 맞은 그는 단신이었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니 키가 1m64㎝였다. 지금은 누구도 그의 작은 키를 말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마음을 울린 그는 분명 거인이었다. ‘나의 노래’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자그맣고 메마른 씨앗 속에서 내일의 결실을 바라보듯이 자그만 아이의 읊음 속에서 마음에 열매가 맺혔으면.’ 그의 나지막한 노래는 우리에게 우렁찬 열매로 남았다.

미술관은 ‘소인국’이었다. 아크릴판으로 만든 가수 신중현·김수철·나미·박정현이 보인다. ‘달인’ 김병만의 장난스러운 몸짓도 만날 수 있다. 이뿐이 아니다. 배우 찰리 채플린·더스틴 호프먼이 있고, 화가 파블로 피카소·렘브란트 판 레인도 있다. 팝가수 프린스·레이디가가·에이미 와인하우스에도 눈길이 간다. 전시장 복판에 놓인 소형차 ‘미니’는 또 어떤가. 지난 26일 엿새간 전시를 마친 최성원 작가의 ‘빅 미니 클럽(Big Mini Club)’ 풍경이다.

전시의 의미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작가는 ‘대단한 작은 아티스트들’을 모셨다고 했다. 초청 기준은 남자 1m70㎝, 여자는1m60㎝ 이하다. 작가 또한 1m65㎝다. 한때 1m80㎝가 안 되면 ‘루저’로 불렸던 우리 사회, 키가 작다고 기마저 죽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웅변으로 다가온다. 더 확대하면 가난하고 힘겨운 우리 보통 사람에 대한 응원이자 격려다. 전시장 벽면 초청장에서 한글은 크게, 영어는 작게 디자인한 이유도 알 것 같다.

전시는 한바탕 놀이터다. 간단한 음료가 제공됐다. 사진을 맘껏 찍어도 된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춰도 무관하다. 갤러리라는 격식을 뛰어넘었다. 조금 과장해 피곤한 시대에 지친 이들을 위한 살풀이다. 마치 거울처럼 아크릴판 ‘작은 거인들’에 비친 자신을 응시하며 관객들은 스스로를 다잡게 된다. 작품 속 인물과 마주치는 순간 그들이 묻는 것 같다. “그대는 키만 큰 싱거운 사람인가, 아니면 마음이 큰 짭짤한 사람인가.”

전시장은 청와대 춘추관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지척에는 총리공관도 있다. 작가는 “특별한 뜻이 없다. 잡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지만 관객으로선 많은 상념이 스친다. 소인국으로 떨어진 여의도도 생각난다. 줄타기를 제대로 못하면 관직에서 쫓겨나고, 달걀 깨는 법을 놓고 나라가 갈리는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릴리퍼트’와 여당 대표가 단식을 하고, 국정감사도 반쪽으로 치르는 이 나라 정치판은 얼마나 쌍둥이 같은가.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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