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혁명의 아침

이상언 입력 2016. 9. 27. 18:40 수정 2016. 9. 28.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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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수학 선생님을 겸하던 학원 원장 선생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방을 싸라”고 했다. 이어 학생 하나하나에게 흰 우편봉투를 건넸다. “학원 문을 닫기로 했다. 이제 여러분은 이곳에 오면 안 된다. 봉투에 든 것은 학원비다. 부모님께 갖다드려라.” 원장 선생님의 두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방학의 자유를 만끽하게 됐다는 기쁨이 학원 친구들을 자주 보기 어렵게 됐다는 아쉬움을 압도했다. ‘아재들’ 학창 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을 혁명적 과외 금지 조치는 그렇게 시작됐다.

어제의 일이다. 앞에 놓인 종이 한 장이 ‘김영란법’ 현실을 눈앞으로 당겨 놓았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 서약서’였다. 지키겠다고 약속해야 할 항목은 다섯 개였다. 그중 둘째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공정한 업무 수행에 장애가 되는 청탁을 근절하여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공직문화를 조성하는 데 앞장선다’. 단순히 법을 잘 지키는 것을 넘어 ‘앞장선다’고 다짐해야 할 상황이었다. 법을 어길 생각도 없지만 앞에 설 계획도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 앞장을 서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서명해 제출했다. ‘지금은 혁명 상황이다’고 속으로 외쳤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국민교육현장)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겠다’고 수천 번 외치며 자란, 맹세에 익숙한 존재다.

회사 인사팀은 이 서약서를 국민권익위원회가 제시한 기본 양식을 고스란히 옮겨다 만들었다고 했다. 김영란법 시행령 42조에는 ‘공공기관의 장은 법령을 준수할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매년 받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김영란법 테두리 안에서는 언론사도 공공기관이다. 전국의 공무원·교사와 더불어 기자들도 서약서를 내야 한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여러 진정사건에서 ‘개인 내심의 자유나 가치 판단’과 관련된 서약서 요구는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해칠 수 있으니 없애라고 권고했다는 사실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혁명(누구는 ‘청렴 혁명’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더치페이 혁명’이라고 한다) 상황이니까.

김영란법은 엄격히 이행될 것이다. 그동안 공무원들의 가벼운 비위에는 동정 내지 공범의식에 의해 눈감아 줘 온 언론들이 독한 감시자가 될 것이다. 기자 수만 명이 앞장서겠다고 서약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언론을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입법자 입장에서의 ‘신의 한 수’다.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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