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포켓몬 고 '덕후'가 되다

고정애 입력 2016. 7. 29. 00:15 수정 2016. 7. 29.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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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그러니까 산재(産災)랄 수 있다. ‘포켓몬 고’ 덕분에 속초·울진행 교통편이 동난다는데 직업상 안 해볼 도리가 없었다. 걱정이 없진 않았다. 한때 마이크로소프트의 ‘지뢰찾기’에 빠져 세상이 격자와 숫자로 보였었다. 돌이켜보면 영화 ‘매트릭스’ 저리가라였다. 그래도 이젠 불혹(不惑)을 한참 지났으니 불혹일 수 있겠다고 믿었다. 과신이었다.

괴물들은 낯설었다. 포켓몬 1세대 150종 중 구구·피죤·피죤투를 구분할 수도, 슬리프·슬리퍼의 차이를 알기도 어려웠다. 요괴학 안에서 성장한 이들과 같아질 순 없었다. 그러나 하나둘씩 잡으면서 빠져들었다. 승부욕이다. 직장을 관뒀다는 이가 이해됐다. 얼핏 영국 내 포획 가능한 괴물들을 모두 잡아볼까 싶었다. 아주 잠깐 동안 말이다.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어언 10일. 동선이 달라졌다. 그간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 최단거리를 지향했다면 이젠 포켓스톱을 최다로 거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괴물 잡는 데 쓰는 포켓볼을 받기 위해서다. 일종의 경로찾기 수학이다. 알을 부화하기 위해 웬만하면 걸었다. 10㎞쯤이야. 소요(逍遙)가 일상이 됐다.

그러는 사이 알게 됐다. 런던의 우리 동네에 1800년대 말까지 공동우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낡은 음용 분수대가 토인비를 기린 시설이란 것도. 역사학자 토인비가 아닌 그의 아버지인 의사 토인비다. 동네 공동체를 가능케 한 인물이라고 했다. 포켓스톱이 자리한 곳들이다. 누군가 건물 외벽에 우주선을 그려놓았다는 것도, 황금 우체통이 존재한다는 사실도다.

한 SF 작가는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한 기술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으로 세상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다. 15~35세에 등장한 기술은 새롭고 놀라우며 혁명적인 것이다. 35세 이후 등장한 모든 기술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포켓몬 고 덕분에 ‘자연에 반하는’ 기술(증강현실)과 만났다. 또 그 덕분에 현실이 ‘증강’됐다.

흔히 포켓몬 고를 두고 포켓몬 콘텐트와 기술의 결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포켓몬 문외한에게도 폭발력을 가진 건 소소한 것까지 챙겨 온 누군가, 또 그걸 기억하고 공유한 무언가의 덕분이라고 믿는다. 바로 문화다.

우리 정부가 한국형 포켓몬 고를 거론했다고 들었다. 인터넷 속도론 세계 최고라지만 실어 나를 콘텐트엔 별 공을 안 들여 온 우리다. 개방보단 닫아걸기에 급급했다. 글쎄다. 그나저나 희귀 포켓몬인 ‘망나뇽(Dragonite)’을 볼 수나 있으려나.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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