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끝까지 살아남을 자

박정호 입력 2016. 7. 28. 00:27 수정 2016. 7. 2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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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

벌써 12년 전이다. 나는 처음으로 KTX 고속열차를 탔다. 2004년 4월 KTX 정식 개통 직전, 시험 운행에 탑승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달음에 내려갔다. 시속 300㎞를 돌파하는 순간 ‘놀라운 신세계’를 경험한 느낌이었다. 코레일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지난해 KTX 하루 평균 이용객은 17만1000명. 승객 수는 일반 열차에 조금 못 미쳤지만 매출은 코레일 전체의 절반을 넘는 55억원이었다. 이렇듯 KTX는 지금 우리 경제를 잇는 핏줄이다.

요즘 KTX가 대중문화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영화 ‘부산행’ 여파다. 지난 26일 개봉 1주 만에 전국 관객 600만 명을 넘어섰다. LTE급 속도다. 올 첫 1000만 영화 진입은 물론 역대 최고 흥행작 ‘명량’(1761만 명)을 추월할지 관심사다. 상업영화가 대개 그렇듯 ‘부산행’의 얼개는 단순하다. KTX에서 벌어지는 승객과 좀비의 사투를 다루고 있다. 무더위를 잠시나마 식히는 액션과 공포, 가족애가 살아 있다.

‘부산행’은 다분히 한국적이다. 최후 순간까지 딸과 아내, 친구를 지키려는 소시민의 몸부림에 구제역·메르스·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상황을 겹쳐놓았다. 전작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등에서 보여준 연상호 감독의 사회의식이 무뎌졌다고, 남녀의 성 역할이 구태의연하다는 비판도 일부 있지만 수익이 우선인 대중영화를 가름하는 잣대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부산행’은 크게 봐서 이웃을 잃어버린 2016 우리 사회에 대한 뼈아픈 보고서다. 남보다 나만 앞세우는, 나의 이익을 위해선 남의 자리를 앗을 수 있다는 ‘가공할 상식’에 대한 눈물겨운 우화다. 때론 신파로 흐를지라도 ‘한국호’가 현재 속도로 내달리면 결국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자성의 회초리로 다가온다. 좀비의 대습격을 받아 극심한 혼란에 빠진 틈에서 “각자 알아서 사는 거야”라고 딸에게 훈계하는 펀드매니저 석우(공유)를 닮은 사회 지도층이 연일 뉴스에 오르는 오늘이다.

영화는 ‘여는 자’와 ‘닫는 자’의 대립구도다. 좀비떼 앞에서 열차 칸막이를 여는 자는 함께 살려는 공생을, 닫는 자는 혼자 살려는 독선을 은유한다. 과연 끝까지 살아남을 자는 누구인가.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적자생존 자연에서도 경쟁이 아닌 공존이 진화의 본질”이라고 거듭 말해왔다. 동식물도 아는 자명한 지혜, 왜 우리는 이를 잊고 지내온 걸까. 양극화도, 저출산도 해법은 여기에 있다. 다시 이웃을 돌아보자. 길이 나타날 것 같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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