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꺼림칙한 중향평준화

이상언 2016. 7. 27.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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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탕수육 작은 거 하나 하고요….” “탕수육 중짜 하나!” “소짜는 없어요?” “네. 중짜가 작은 거예요.” “아, 예. 그럼 그거 중짜 하나 하고요 ….” 익숙한 대화 아닌가. 언제부턴가 중국집 메뉴판에서 ‘소(小)’를 찾기 어려워졌다. 작은 것을 주문해도 ‘중(中)’만큼 준다는 것인지, ‘소’가 적혀 있어야 할 곳에 그냥 ‘중’을 써 놓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10여 년 전 시애틀 ‘별다방’이 국내에 상륙했을 때 이런 일이 빈번했다. “사이즈는요?” “작은 거요” “톨 사이즈요?” “아뇨, 작은 거요.” “톨 사이즈가 작은 거예요.” “아, 네. 그럼 그거요.” ‘그란데’나 ‘벤티’ 앞에 선 톨은 왜소했다. ‘tall=길다’는 상식은 본토에서 날아온 단어에 허물어졌다.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철석같이 ‘중형’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차가 ‘소형차’라고 분류된다는 걸 알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 일반 승용차는 중형 세단이든, 대형 리무진이든 전부 도로교통법상 소형차다. 중형·대형은 자동차 회사가 붙인 수식어다. 듣기 좋으라고.

이런 언어 ‘인플레이션’ 세태를 거스르는 일이 있다. 정치인의 ‘중향평준화’ 외침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앞장서고 있다. 국민의 삶을 ‘상향평준화’시키겠다고 하는 것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중향이 맞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달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양보가 필요하며 상대적으로 고임금에 복지 혜택이 많은 정규직들이 우선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좌파 진영과 정치인은 하위 90%도 상위 10%처럼 대우하는 상향평준화를 주장하지만 실현 불가능하고 무책임하다”며 중향평준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대기업 정규직 임금을 줄여 마련한 비용으로 신참 정규직을 더 뽑거나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자는 얘기다.

빈부 격차를 줄이고 청년 일자리를 더 만들려는 진정성을 인정한다 해도 그의 창조적 해법은 씁쓸하다. 사기업 직원들 밥그릇 크기를 줄여 소득 평준화로 접근하는 나라를 본 적이 있나. 모범적 선진국들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물리고 그들의 절세 꼼수를 차단하는 정공법을 쓴다.

오랜 세월 우리의 목표는 ‘선진국처럼 많은 국민이 잘사는 나라’였다. 그런데 어느새 ‘중간 정도로 같이 잘사는 나라’를 얘기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되면 좋겠는데 ‘중’이라 적혀 있는 작은 탕수육처럼 실제로는 ‘하향평준화’가 될까봐 두렵다.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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