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정약용과 5월 '가정의 달'

박정호 입력 2016. 5. 5. 00:14 수정 2016. 5. 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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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

5월 달력에 없던 나흘 연휴가 시작됐다. 정부와 기업은 “돈을 써야 경제가 산다”며 소비진작에 나섰다. 꿀 같은 휴식, 잠시 짬을 내서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에 들를 것을 추천한다. 작지만 귀한, 낡았지만 새로운 책을 볼 수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이 남긴 ‘하피첩(霞?帖)’이다. 몰론 전시된 책을 넘겨볼 순 없다. 한문으로 돼 있으니 내용을 짐작하기도 어렵다. 걱정 마시라. 원본 옆에 새로 만든 한글 번역본이 있으니 문제가 없다. 조금 손품을 팔면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번역본·영인본 PDF 파일도 구할 수 있다.

하피첩, 제목부터 생소하다. ‘하피’는 ‘붉은 치마’를, ‘첩’은 소책자를 뜻한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은근한 부부애를 엿볼 수 있다. 다산이 이 책자를 만든 때는 1810년 천주교도로 몰려 전남 강진에 유배된 지 10년째 되는 해였다. 당시 경기도 광주에 살던 부인 홍씨가 남편을 그리는 마음에서 시집올 때 갖고 온 비단치마를 보내왔다. “너무 보고 싶어요”의 에두른 표현이다. 아내의 빛바랜 치마를 받은 다산. 역시 고수(高手)다. 치마를 잘라 “잘 지내오. 나도 그립소” 대신 ‘사랑의 열매’인 두 아들에게 보내는 경계(警戒)의 글을 썼다.

전시실에 펼쳐진 문구 하나. ‘경직의방(敬直義方)’. ‘공경한 자세로 마음을 바로잡고, 정의로 일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선비의 꼿꼿함이 전해진다. 또 다른 문구에선 ‘화평(和平)’에 밑줄이 쳐 있다. 강조의 의미다. ‘천리(天理)는 순환하니, 한 번 넘어졌다고 일어나지 않을 것은 없다’고 했다. 희망 실종의 요즘에 든든한 위안이 된다. ‘당파적 사심을 철저히 씻어라’ ‘근면과 검소, 이 두 가지는 좋은 전답보다 나아서 한 평생 쓰고 남는다’ ‘재물이란 메기와 같다. 잡으려 할수록 미끄럽게 빠져나간다’도 가슴에 와 닿는다.

하피첩은 다산의 일생만큼 기구했다. 한국전쟁 중 유실, 2004년 폐지상 수레에서 발견, 2006년 ‘진품명품’ 출품, 2010년 보물 지정,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압류품 포함,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 낙찰을 거쳐 이번에 처음 관객과 만나게 됐다. 파란만장 하피첩, 200여 년 만의 귀환이다. 반가울 수밖에 없다. 오늘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가정의 날, 21일 부부의 날 등 때마침 생각거리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녀에게 서로 무슨 말을 남기면 좋을까. ‘경직의방’ 넉 자만 기억해도 남다른 연휴가 될 것 같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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