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가오 전성시대

박정호 입력 2016. 2. 11. 00:35 수정 2016. 2. 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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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영화 ‘검사외전’의 기세가 놀랍다. 개봉 1주(9일 현재) 만에 관객 544만 명을 기록했다. 설 연휴를 주름잡았다. 황정민·강동원, 두 뛰어난 배우의 힘이 컸다. 키득키득 웃음이 터졌다. 웃자고 만든 오락영화다. 그런 코미디에 정색하고 달려들면 그 또한 코미디일 터. 그런데도 해야겠다. 웃음에도 종류가 있다. 배꼽이 빠지는 폭소가 있는 반면 눈가를 찌푸리는 ‘썩소(썩은 미소)’도 있다. ‘검사외전’은 후자에 가까웠다. 혀끝에 남은 맛이 소태를 씹은 듯했다.

영화에선 강동원이 빛난다. 전과 9범의 귀여운 사기꾼, 그의 세 치 혀에 순진한 여심이 무너진다. 남성 관객 입장에서도 불편한 건 여성 캐릭터가 한결같이 무력하다는 점. 강동원은 미국 유학생을 사칭하며 부잣집 딸을 호리고, 서울대 재킷을 걸치며 선거사무소 여직원을 홀린다. 영화 속 여성-그나마 별로 등장하지 않지만-은 100% 들러리요, 꼭두각시일 뿐이다. 백치미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여전히 학력 콤플렉스에 매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그 반대쪽에선 ‘가오’가 폭발한다. 일본어로 얼굴(顔)을 뜻하는 가오는 남성 중심의 언어다. 자존심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허세로도 이해된다. 지난해 1341만 명을 동원한 ‘베테랑’의 명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코드가 ‘검사외전’에서도 되풀이된다. 정치·검찰·기업의 부패 고리를 타파하는 자칭 ‘또라이’ 검사 황정민의 복수극은 손상된 가오를 되찾으려는 몸부림이다. 누적 관객 900만 명을 넘어선 ‘내부자들’(디 오리지널 편 포함)도 각기 정의와 권력을 앞세운 가오들의 격돌이었다. ‘내부자들’에서 빽 없는 검사와 호남형 조폭이 손을 잡았다면 ‘검사외전’에선 신림동 쪽방 출신의 검사와 꽃미남 사기꾼이 한 배를 탄다. 우리가 아직도 쾌도난마식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일까.

스크린을 달구는 가오들의 행진은 좋든 싫든 우리의 아픈 오늘을 드러낸다. 그 손가락은 기득권을 향한다. 가팔라진 양극화를 꼬집는다. 서민의 막힌 가슴을 뚫어준다. 하지만 맛난 음식도 지나치면 물리는 법, 가오들의 분풀이로는 시대의 난제를 풀어갈 수 없다. 순간의 카타르시스와 구조화된 갈등만 반복된다. 충무로도 이제 침착해지자. ‘친구’의 대사를 빌리면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다.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등 2000년대 초 조폭영화가 지나간 자리에 한국 영화 침체기가 왔었다. 2016년에는 기우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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