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물보다 진한 피, 피보다 진한 돈

배명복 2015. 7. 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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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br>논설위원·순회특파원

오래전 새 둥지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어미 새를 기다리며 새끼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조류학자들 얘기는 다르다. 검독수리나 제비꼬리솔개 등 일부 조류에서 나타나는 새끼들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은 상상 그 이상이란 것이다. 먼저 알에서 깨어난 형이 뒤따라 부화한 동생을 부리로 마구 쪼아대는데,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먹이가 부족한 어미 새는 보고도 못 본 척한다니, 아무리 짐승이지만 참 비정하다.

 성경대로라면 인류 최초의 살인도 형제살해였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는 두 아들을 뒀다. 형이 카인, 동생이 아벨이다. 형제는 각각 밀과 양을 제물로 바쳤다. 하느님이 아벨의 제물을 더 좋아하자 화가 난 카인은 동생을 들로 데려가 죽여버렸다. 형제살해를 뜻하는 ‘카이니즘(Cainism)’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동생에 대한 형의 질투심에서 살인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로마의 역사도 형제살해에서 비롯됐다. 쌍둥이 형인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왕이 되면서 로마가 시작됐다.

 왕위가 세습되던 왕조사회에서 왕자들은 서로 왕권을 차지하려고 피 터지게 싸웠다. 왕실의 형제살해 풍속에는 동서의 차이가 없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아들들이 벌인 ‘왕자의 난’도 피비린내를 풍겼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아예 궁중의 형제살해를 제도화하기도 했다. 새로운 술탄이 등극하는 날, 모든 형제들은 감금되고, 왕세자의 탄생에 맞춰 일제히 목 졸려 살해됐다. 메흐메드 3세의 즉위 때는 19명의 형제가 부왕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총수 자리를 놓고 재벌가 자식들이 싸우는 현대판 ‘왕자의 난’은 한국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국내 굴지의 재벌들치고 형제간 후계 싸움이 없는 곳을 찾기 어렵다. 이번에는 재계 순위 5위인 롯데그룹이 드라마 같은 ‘명장면’을 연출했다. ‘총기’를 잃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형이 벌인 쿠데타를 동생이 하루 만에 뒤집었다. 여세를 몰아 창업자인 아버지의 총수 지위마저 박탈했다. 피만 안 튀었다뿐이지 왕조시대의 궁중 혈투가 따로 없다.

 ‘하늘 아래 두 태양은 없다’고, 어느 한쪽의 완승으로 결판나기 전엔 끝날 싸움이 아니라고 한다. 욕심을 줄이고 형제끼리 사이좋게 나눠 가지면 좋지 않겠느냐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것 없는 소시민의 물정 모르는 헛소리일 뿐이다. 피보다 진한 것이 돈이라면 인간이 검독수리 새끼와 뭐가 다를까.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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