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자가 격리'에 놀라는 불순한 이유

이상언 2015. 5. 2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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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br>사회부문 차장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 가까이에 있었던 60여 명을 “격리했다”고 당국이 발표했을 때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한, 우주복 비슷한 복장의 의료진만 드나드는 특수시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자신의 집에 머물며 스스로 격리하는 ‘자가 격리’였다. 이 생각과 현실의 간격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가능한 답들을 생각해 봤다.

 ①소설·영화·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베스트셀러 『눈먼 자들의 도시』, 영화 ‘감기’, 드라마 ‘세계의 끝’…. ‘괴질’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스쳐간다. 다들 격리된 공간이 주요 무대다.

 ②과학적 합리성이 부족하다. 당국자는 “발병 전에는 감염 상태여도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는다. 발병이 돼도 공기를 통한 감염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했다. 집에 있다가 병세가 나타나면 재빨리 당국에 보고해 격리시설로 가면 된다는 얘기다. 서울대생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 읽는다는 책 『총, 균, 쇠』에는 ‘번식을 위한 병원균의 영리한 진화적 전략’이 언급된다. 병원균의 양태가 늘 인간 예측범위 내에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당국자들이 말하는 ‘과학적인 태도’를 위해서는 이것 역시 하나의 가설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땅하다.

 ③사람들의 ‘선의’를 의심한다. 당국자들은 자가 격리자들이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의 접촉을 스스로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도덕적 자세다. 이런 선의를 잠시라도 의심했던 것은 ①번의 탓도 있다. ‘세계의 끝’에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감염돼야 치료법이 더 빨리 연구될 것’이라는 생각에 격리를 거부하고 균을 퍼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감염자가 등장했다. 비정상적인 사고로 세상에 증오심을 보이는 환자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허구적 연출일 뿐이라고 믿는 게 합리적 태도다.

 ④인권의식이 낮다. 당국자는 “감염이 확인된 것도 아닌 이들을 외부와 차단된 시설에 격리하는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으로의 전파를 걱정해 격리를 요청하는 이도 잘 설득해 돌려보내는 게 인권 보호라고 공무원들은 믿고 있다.

 내게는 4개 항목이 모두 해당된다. 반성해야 한다. ③, ④번은 윤리 문제에까지 연결돼 있다. 그런데 감염자가 늘면서 이처럼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당국자들이 발병자에게 국한되는 시설 격리의 원칙을 포기했다. 드라마·영화 속의 갈팡질팡하는 공무원들이 다시 떠오른다. 아무래도 반성이 부족한가 보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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