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받아들여야 바다가 된다

입력 2015. 5. 4. 00:05 수정 2015. 5. 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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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br>아주대 교수</br>문화콘텐츠학

사람의 일생을 책으로 쓴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 사람을 책으로 바꿔보자. “책이 나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책은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책의 탄생은 경하할 일이다. 하지만 ‘출판기념회’ 하면 퍼뜩 떠오르는 풍경은 무엇인가. 마이크 잡고 연설하는 정치인, 듣는 둥 마는 둥 명함 주고받으며 악수하는 사람들, 부지런히 봉투 접수하는 비서관.(방명록에 이름 적는 이들 중에는 나중에 리스트 작성할 사람도 끼어 있을지 모른다.) 오죽하면 출판기념회를 법으로 규제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이와는 다른 소박한 출판기념회가 지난주에 열렸다. 닮은꼴 두 남자가 손을 잡고 무대에 등장한다. 한 사람은 아흔을 바라보는 최고령 연예인(송해), 옆은 대략 30년 연하의 시인이자 영문학 교수인 저자(오민석)다. 이 희한한 조합은 20여 년 전 낙원동의 한 목욕탕에서 시작됐다. 가릴 것 없는 시작이 가릴 것 없는 사이로 발전하기까지 대략 20년이 걸렸다.

 책 제목도 예사롭지 않다. 『나는 딴따라다』.(아이돌 필독 도서로 강추한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사랑받은 자’라기보다는 오랫동안 ‘미움 받지 않은 자’에 가깝다. 수능보다는 내신이 좋았다. 세속의 사랑은 뜨거웠다가 사그라드는 경우가 태반이다. 28년 동안 매주 일요일 낮에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건 그가 권력자와 시청자의 눈 밖에 나지 않은 덕분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역대 KBS 사장의 공로를 인정하는 편이다. 자르지 않고 무대에서 놀게(?) 해준 것만으로도 시청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은 거니까.

 주인공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런 면에서 송해는 한국 대중문화사의 주인공 중 한 명이라 할 만하다. 이분의 본명은 송복희다. 국민MC가 된 데는 예명도 한몫했다. 만약 평전을 다시 쓴다면 제목은 이게 어떨까. 『받아들여야 바다가 된다』. 송해가 바다가 된 데는 받아들임(받은 만큼 드린다)이 있었다. 기념회의 주제어도 ‘감사’였다.

 그는 돈을 많이 벌었다기보다 사람을 많이 벌었다. 까다롭게 굴지 않고 소탈하게 사람을 받아들였다. 미움 받을 용기는 부족했지만 미움 받지 않을 지혜는 충만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동해·서해·남해를 잇는 또 다른 바다(宋海)가 됐다. 정이 넘실대는 바다엔 네 살 꼬마부터 아흔 살 노인까지 사람으로 출렁거린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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