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귀농(歸農)

한삼희 논설위원 입력 2012. 12. 9. 23:39 수정 2012. 12. 1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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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간부 S씨는 2년 뒤 은퇴하면 가서 살려고 덕유산 아래에 땅을 사뒀다. 한 달 전에 만났더니 그는 자신이 백 살까지는 살 거라면서 '노인에게 맞는 전원생활 집' 설계에 푹 빠져 있었다. 엔지니어답게 관급공사에서 남는 자재 싸게 사는 법도 연구해뒀고 목공 일도 익혀 왔다. 비료·농약 안 쓰는 자연농법으로 사과 재배를 성공시키겠다며 들뜬 표정이었다. 준비 과정 자체가 큰 즐거움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7년 서울대 교수 생활을 그만두고 자기가 설계해 직접 지은 시골집에서 산다는 K씨를 찾아간 일이 있다. 풍광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집이었다. 뜻밖에 그는 동네 사람들 배척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지하수를 파면 "마을 지하수 다 말라버린다"고 시비 걸었다. 포클레인으로 동네 일 거저 해주겠다고 나섰더니 "그럼 여기 사람 일거리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며칠 전 K씨가 연락해와 근황을 물었더니 이젠 적응해 산다고 했다. 사투리도 배우고 아이들 공부방 같은 것도 만들어주자 마음을 여는 이웃이 꽤 생겼다는 것이다. 몇 사람에겐 시비를 걸어와도 굽히지 않고 맞대응하곤 했더니 더 귀찮게 하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요즘엔 귀농하겠다면서 농사짓는 법에 앞서 미용 기술, 보일러 기술부터 배워두는 사람들이 있다. 시골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 갖고 들어가 봉사하면서 현지 주민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겠다는 생각에서다.

▶작년 귀농 인구가 1만75가구였다고 한다. 2010년(5405가구)보다 86%나 늘었다. 귀농인 평균 연령이 52.4세인 것을 보면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대거 시골로 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중 1인 가구가 58%나 된다. 초기 정착 위험 때문에 가장(家長) 먼저 귀농해 정착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개중엔 남편은 시골, 아내는 도시에 살면서 두 집 살림하는 경우도 있다.

▶농촌에 뿌리내리려면 이웃과의 친교(親交)만큼이나 고독과의 친교도 중요하다. 19세기 호숫가에 살면서 무소유 삶을 실천했던 미국 사상가 헨리 D 소로는 숲에 들어가 뭘 하겠다는 거냐는 물음에 "계절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할 일은 충분하지 않겠소"라고 했다. 시골생활 6년째인 어느 인사는 블로그에 "번잡한 대도시에 살면서도 고독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고 썼다. '군중 속 고독'은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지만 '자연 속 고독'은 때로 마음이 충일(充溢)한 경지에 이르게 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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