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외국어 표지판
30몇년 전 서울 구로역(九老驛)을 영어로 'Nine Olds Station'이라고 써놓던 시절이 있었다. 옛날 이 고을에 아홉 노인이 살았대서 붙은 이름이지만 그걸 그대로 영역(英譯)한 게 고교생 눈에도 우스꽝스러웠다. 길 가던 외국인이 "나인 올즈 스테이션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누구든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80년대 독립문을 'Dog Rib Mun'이라고 쓴 적도 있다. 뜻이 '개(dog) 갈비(rib)'가 돼 외국인 여행자들의 웃음을 샀다.
▶요즘 서울광장 부근에는 시청을 알리는 안내판에 'City Hall' '市廳' '市 ' '市厅' 네 가지 외국어가 쓰여 있다. 영어, 중국어 번체자, 중국어 간체자, 일본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시청'보다 '시정부(市政府)'라고 많이 쓴다. 공항 청사 '흡연실(吸煙室)'은 일본인에게는 '끽연실(喫煙室)', 중국인에겐 '吸烟室'로 써줘야 친절하다. 일본인에게 '흡연'은 불이 났을 때 연기를 마신다는 뜻이다.
▶서울시가 전문가 조언을 얻어 공공 안내물의 '외국어 표기 기준 개선안'을 마련했다. 한글 발음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명칭 표기가 외국인에게 너무 어려워 보완했다고 한다. 한강은 'Hangang'으로 돼 있던 것을 'Hangang (River)'로 고치고, 남산도 'Namsan'에서 'Namsan (Mountain)'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경복궁은 'Gyeong bokgung(Palace)', 여의도는 'Yeouido(Island)'가 된다. 순우리말 지명은 비슷한 발음의 한자로 쓰고, 일본어 표기는 가타카나를 쓰되 한자를 병기하기로 했다.
▶예전에도 서울시는 안내 표지판을 개선하려고 여러 차례 캠페인도 벌이고 수천 수만 개 표지판을 바꾼다며 나섰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안내 표지판 관리가 건설교통부·국토해양부 같은 중앙 부처 따로, 지방자치단체 따로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중앙 부처의 전국 표준 표기안이 없는 상태에서 서울시가 먼저 나섰기 때문에 제대로 시행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한 해 1000만 외국 관광객이 찾아오는 시대다. 그만큼 표지판은 중요한 관광 인프라다. 88올림픽이나 2002월드컵 같은 세계적 이벤트가 있을 때면 으레 안내 표지판을 정비하고 통일한다며 손을 댔지만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진 측면도 있다. 해외여행 길에 정확한 표기를 갖춘 작은 안내판이 꼭 있어야 할 장소에 서 있을 때 감동을 받는다. 선진국 되는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법원, 공탁금 받아야 할 15만명 모두 카톡으로 알린다
- 폴짝거리며 최대 10m까지 발사… 화염방사기 로봇 강아지 판매 논란
- 공중에서 꼬리 부딪히더니 쿵… 전원 숨진 말레이軍 헬기 사고 영상
- 무늬목 합판 사용해 놓고, 광고엔 '원목의 깊이'…과징금 1억2800만원
- ‘서현동 흉기난동’ 최원종, 2심서도 ‘심신상실’ 주장...”형 감경해달라”
- 부평 ‘캠프마켓’ 땅값 정산 갈등... 인천시, 국방부 상대 소송 제기
- “월급 450만원, 타워팰리스 도우미 구해요”… 반응 갈린 공고문
- 80억 보증금 떼먹고 정부 탓한 전세사기범, 징역 8년 확정
- 틱톡 강제 매각안, 美 상원 통과...대통령 서명만 남아
- 호주 총리 “머스크는 오만한 억만장자” 맹비난…무슨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