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쏠렸다

2015. 11. 2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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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이주의 키워드]좌광우도

예민한 미각을 가진 편이 못 돼 음식 맛의 깊이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 경험적으로 익숙한 맛 정도만 과거의 체험에 빗대 말할 수 있다. 대체로 ‘맛있다’ ‘괜찮다’ ‘아니다’ 정도다. 그 평가조차 가격이라는 경제 감각이 개입하니 온전한 미각이라곤 할 수 없다. 그 부족한 감각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것이 ‘회’의 맛이다. 광어와 우럭을 모양새로 겨우 구별할 뿐이다.

그래도 횟집에 간다. 그러다보니 ‘좌광우도’란 말을 종종 듣는다. 눈이 왼쪽으로 쏠려 있으면 광어이고 오른쪽으로 쏠려 있으면 도다리란 설명이 따라붙는다. 구별할 수 없으니 그런가보다 한다. 하지만 두 가지 삐딱한 생각이 든다. 왜 그 생선들의 눈은 쏠려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좌우를 따지는 기준은 무엇일까. 침 튀기며 ‘좌광우도’에 대해 설명하는 맞은편 이와 나의 좌우는 정확히 반대인데 말이다.

민중총궐기가 있었다. 차벽이 서울 광화문과 그 일대를 흡사 수족관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경찰은 물대포까지 신나게 쏴댔다. 집회 결사의 자유를 지닌 시민들이 그 안에 갇혔다. 처지는 참혹했다. 집회 초반, 경찰은 슈팅 게임을 수행하는 철부지들처럼 들떠 보였다. 한 농민이 속절없이 그 ‘슈팅’에 쓰러졌고, 분노를 억누를 길 없는 수많은 시민들이 갈 곳을 잃은 채 그 차벽 안에서 이리저리 떠돌았다. 그렇게 집회가 끝나고 법무부 장관은 예정된 ‘담화’를 발표했다. 조준점은 명확했다. ‘불법’과 ‘엄단’이 한 문장으로 정렬됐다. 그날 거리에는 매캐한 물질이 섞인 허연 물이 둥둥 떠다녔는데, 법무부 장관은 그 상흔을 깨끗하게 외면했다.

어떤 언론들은 이번에도 기다렸다는 듯 호응했다. 하루 만에 ‘폭도’라는 규정이 따라붙었고, 그 쓰러진 농민은 그냥 간략하게 ‘운동권’에 편입됐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의 수도에서 벌어진 일을 강조하던 어느 종합편성채널 패널의 장탄식은 상황에 대한 가장 외설적인 표백이었다.

뜬금없게도 그 말인지 말밥인지를 들으며, 어느 술자리의 ‘좌광우도’가 떠올랐다. 시민들의 눈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고 말하는 언론은 광어일까, 도다리일까. 아니면 미끼를 놓고 기다리는 낚시꾼일까. 예컨대, 99.9%가 편향적 교과서를 택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 같은 이는 ‘좌광우도’의 어느 쪽일까. 일국의 총리를 광어나 도다리에 빗대는 것이 무례하다면, 같은 기준에서 어떤 국가도 제 공화국의 시민들을 겨냥해 살상이 가능한 수단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저 헌법상의 권리(헌법 제21조 ①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를 수행하는 자들을 함부로 폭도로 매도해선 곤란할 것이다.

민중총궐기의 핵심은 경찰 차벽을 기준점으로 어느 쪽이 광어이고 어느 쪽이 도다리냐를 가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 집회는 11개의 구체적 요구안을 갖고 있었다. 그 집회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는 이들은 그 요구안을 읽어보았을까. 10만의 시민이 모여, 명확한 대상을 향해, 정확히 분노만을, 표출한 집회였다. 중요한 건 상황을 신소리로 넘기는 좌광우도 타령이 아니다. 그 분노의 깊이를 음미하기 위해선 우선 11개의 요구안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중요한 건 양식 광어가 될 것이냐, 자연산 도다리가 될 것이냐가 아니다. 벌써 수년째 우리가 갇혀버린 그 수족관을 탈출할 것인지, 한다면 그 너머를 향해 어떻게 헤엄쳐 갈 것인지의 여부다. 왜 같은 무기력을 번번이 반복하고 마는지 깊이 따져봐야 한다. 이미 7년 전, 광화문의 인파가 퇴각할 때 회자됐던 말을 한 번 더 리바이벌하면, 민주주의는 한판 승부가 아니다. 차벽과 폭력의 이분법에서 유유히 탈출하는 지혜의 광장에 서고 싶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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