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그리스人 치프라스

입력 2015. 7. 20. 16:59 수정 2015. 7. 2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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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와 조르바의 나라.. 굴종보다 자유를 택한 전통

독일 모질게 굴다 동티날라

유럽, 아니 세계는 그리스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지구촌 최대 축제인 올림픽의 성화(聖火)도 고대 올림픽을 흉내낸 것이다. 베를린 올림픽(1936년) 때 헤라신전에서 채화된 성화는 불가리아·유고슬라비아·헝가리·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를 통과했다. 성화가 거쳐간 나라들이 하나같이 나치 치하에 들어간 것은 역사의 비극이다. 유럽 문명의 주춧돌인 그리스도 그중 하나다.

고대 그리스 비극(悲劇)을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읽어보자. 안티고네는 테바이의 왕 오이디푸스의 딸이다. 안티고네에겐 쌍둥이 오빠가 있다. 둘은 왕위를 놓고 다투다 서로 찔러죽인다. 왕좌는 외삼촌 크레온에게 넘어간다. 크레온은 쌍둥이 왕자 가운데 에테오클레스는 잘 묻어준다. 반면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돌보는 자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명한다.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을 거리에 방치할 수 없다며 흙을 덮어준다. 이를 알게 된 크레온이 노발대발하고 결국 석굴에 갇힌 안티고네는 목을 매 자살한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아들(하이몬)과 결혼할 사이다. 아버지의 매정함에 분노한 하이몬은 아버지를 향해 칼을 휘두르다 그만 제 몸을 찌르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하이몬의 어머니, 곧 크레온의 아내이자 왕비인 에우리디케는 남편을 저주하며 목숨을 끊는다. 크레온은 원칙을 지켰지만 아들과 며느리, 아내를 잃었다. 이 마당에 원칙이 무슨 소용인가.

안티고네는 흔히 자유의 상징으로 인용된다. 그 전통은 그리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속에 살아 있다. 조르바는 자유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소설 속 그의 어록을 들춰보자.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글우글해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을 확 부숴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그리스인 조르바'를 우리말로 옮긴 소설가 이윤기는 카잔차키스를 "영혼의 자유를 외치는 거인"으로 묘사한다. 고향 크레타 섬에 묻힌 카잔차키스의 묘비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라고 적혀 있다.

그리스가 마치 인류의 공적인 양 욕을 얻어 먹고 있다. 사실 그래도 싸다. 빚쟁이치곤 너무 뻗댄다. 적어도 구제금융 선배인 우리 눈엔 그렇게 보인다. 우린 직수굿이 채권단이 시키는대로 다 했다. 이 악물고 빚을 조기상환했다. 그런데 가만, 그렇게 해서 우리는 과연 뭘 얻었나. 그후 한국 경제가 탄탄대로에 올라섰냐 하면 그도 아니다. 세계 최강 미국은 돈을 펑펑 찍어서 경제를 살렸다. 일본도 미국 따라하기에 나섰다. 긴축으로 죽어나는 건 한국이나 그리스 같은 작은 나라들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 부채 탕감을 주장하는 건 의미심장하다. IMF는 한국에서 저승사자로 통했다. 그때 내린 처방은 너무 가혹했다. 그나마 우리가 '독종'이라 이겨낸 거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미 프린스턴대)는 긴축을 강요하는 독일식 해법을 거칠게 비판한다. 그러면서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더러 차라리 유로존에서 빠져나오라고 충고한다.

금융위기 이후 유럽대륙의 패권은 독일이 장악했다. 명실상부한 맹주다. 프랑스는 제 코가 석자다. 유로존 외곽의 영국은 바다 건너 불구경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아테네는 독일 군홧발에 짓밟혔다. 민간인 수만명이 죽었다. 그리스 레지스탕스는 나치에 맞서 격렬하게 싸웠다. 독일을 일본, 그리스를 한국으로 바꾸면 그림이 확 들어온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메르켈 정부가 70년 전후 외교를 단 한번의 주말에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메르켈 총리는 마치 안티고네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크레온처럼 굴고 있다. 너무 모질면 동티가 난다.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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