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과의 뽀뽀는 정산 다 하고 난 뒤..

2014. 8. 1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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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연애 / 동업하는 커플

▶ '연인 사이에 사업은 같이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하지만 연인이야말로 서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최고의 사업 파트너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몇 달 전, 남자친구와 사업을 시작한 여인이 있습니다. 사업이 커지면서 남자친구와 그녀 사이엔 전에 없던 묘한 긴장감이 서서히 증폭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의견차이로 충돌하는 일도 잦아지고요. 그런 것들이 쌓여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져만 간다는데요.

그와 사귄 지 1년이 되던 때, 우리는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현재의 직장이 딱히 맘에 안 들어서도 아니었고, 일상이 지루했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나보다 한살이 어린 그가 하던 일을 쉬고 딱히 할 일이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 첫째 이유였고, 그를 만나기 전에 혼자서 무턱대고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봤던 과거에 대한 만회심리가 작용한 것이 둘째 이유였다. 과거에 혼자 사업을 하면서 관련 정보를 많이 얻었고, 그때의 시행착오가 좋은 교훈이 됐기 때문에 이번엔 잘해낼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함께한다면 두번의 실패는 있을 수 없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남자친구는 신중하면서도 화끈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의 사업 제안을 그날로 받아들인 그는 근사한 상호를 지었고, 이날을 기념하지 않을 수 없다며 동네 삼겹살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당장 오프라인 매장을 차릴 형편은 안 됐던 터라, 일단은 인터넷을 통한 판매로 조그맣게 시작하기로 하고 외국에서 물건들을 사들였다. 과거의 경험 덕에 이 사업의 판도를 꿰고 있었으므로 어렵지 않게 국외 판매자들을 접촉하여 저렴하게 물건을 떼어 올 수 있었다. 내가 물건을 고르고 사들이는 동안, 남자친구는 구청과 은행에 드나들며 사업자 등록이며 통신판매업 면허, 사업자 우대 통장 개설 등의 행정업무와 경영 전반을 도맡았다. 평소 친분이 있던 디자이너와도 이야기가 잘되어,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 촬영을 맡기게 되면서 그럴싸한 홈페이지의 모습도 갖추게 되었다. 산뜻한 출발이었다. 과거에 멋모르고 덤볐던 사업의 실패가 쉽게 납득되면서 부끄러워지는 한편, 희망찬 앞날에 대한 기대감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함께 론칭한 인터넷 쇼핑몰남친은 사장, 난 투잡 뛰는 이사사업 잘됐지만 실수 늘어갔고남친의 성화는 더 독해졌다일주일에 한번 정산 겸 회식심상치 않은 기운 흐르면서말 못한 감정은 미해결 상태설레면서도 뭔가 불편했다

백수에서 어엿한 사장님으로 신분이 상승한 남자친구도 예전보다 활기차 보였다. 연체된 카드대금 납부 기한을 연장하기 위해 잔뜩 움츠린 채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가던 그였건만, 어느덧 은행에 들어가서 담당 직원을 찾아 환율이며 수표 발행이며 각종 경제학 용어를 큰 소리로 읊어댔다. 우리 커플을 더욱 고무시킨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쇼핑몰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갔고,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구입 문의가 이어졌다. 바삐 돌아가는 사업 탓에 나는 회사에서도 짬이 나는 대로 몰래몰래 쇼핑몰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모니터링을 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업이라 아직은 따로 직원을 둘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대부분의 일을 남자친구 혼자서 감당해내는 게 사뭇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상사의 반짝거리는 민머리가 파티션 너머로 보이는 게 신경쓰였지만, 눈치를 봐가며 회사일과 사업을 병행했다. 같은 직종에서 일한 지도 어언 십년 차라 그 정도 짬밥은 된다며 스스로에게 자신 있게 투잡족을 선언했다. 물론 이 사실을 회사 사람들이 알게 해선 안 되었다.

"유 이사, 화요일에 구입한 김○○님에게서 문자 왔어. 사흘이나 지났는데 물건 아직 못 받았다고. 그래서 내가 택배회사에 송장번호 문의해서 알아봤는데 주소가 잘못 기입돼 있더라고. 이런 실수를 하는 게 말이 돼? 지난번에도 내가 주의 줬자나. 에휴…" 유 이사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남자친구가 나를 부르는 이름이다. 처음엔 취미활동처럼 시작했던 일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고서부터 남자친구는 이 사업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매사에 칼같이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는 그답게, 나에게도 꼼꼼하고 확실한 일처리를 요구했다.

실수할 때마다 다그치고 나를 못 미더워하는 남자친구의 태도에 감정이 상했지만, 내 실수를 인정했기에 되받아치지 않고 그 상황을 넘겼다. 핑곗거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감을 앞둔 회사일로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이런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았다. 아무리 이 사업을 회사일과 같이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기초적인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회사에서 다른 직원들 눈치 보면서 하느라 그런 실수가 생겼던 거라고 했다가는, 10년씩이나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의 무능력을 시인하는 꼴이 될까봐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루는 직장 상사가 나를 따로 불렀다. "유 과장, 내가 주초에 맡겼던 일은 어떻게 돼가나? 내일모레 업체 사람들 만나서 프레젠테이션해야 하는데, 준비 다 된 거야?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최 대리가 통화하는 걸 얼핏 들었는데 아직 팀 미팅 한번도 안 했다면서…요새 무슨 일 있나? 정신없어 보이네." 유 과장은 회사에서 나의 직함이다. 회사일과 사업을 병행하느라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면서 깜빡 잊고 있었던 압박감은 어느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해결해야 할 회사일은 자꾸만 쌓여가고, 그렇다고 남자친구와 하는 사업에서 내가 담당하기로 한 업무를 소홀히 했다가는 남자친구에게 또 한소리 듣게 생겼으니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우리의 사업자 통장 잔고가 불어나는 것과 동시에 나의 실수도 늘어났고, 그에 맞춰 남자친구의 성화는 더 독해지고 잦아졌다.

남자친구와 단둘이서 하는 회식 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씩 회의와 정산을 겸한 회식을 했는데, 그날은 내가 한주에서 가장 기다리는 날이었다. 그날만큼은 부하 직원을 혼쭐내는 사장님이 아닌 예전의 다정다감한 남자친구와 데이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년째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겨우 한달에 한번 있는 단체 회식도 갖은 핑계를 대가며 빠지기 급급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에는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나는 나대로, 남자친구는 남자친구대로 한주 동안 말 못하고 눌러왔던 감정들이 아직 미해결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아마 남자친구도 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을 것이다. 회식 장소로 정한 스테이크집 앞까지 우리는 아마도 사장과 이사의 거리를 유지한 채 아무 말 없이 걸을 것이다.

투잡 뛰는 유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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