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배신의 정치' '배제의 정치'

최창렬 2015. 6. 3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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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의 본질은 개정안의 위헌 여부다. 그러나 거부권 파동은 여권 내의 권력투쟁으로 변질됐다. 청와대와 친박 그룹의 정국 주도권 확보를 위한 시나리오의 서막이며 승부수란 추론이 그리 과하게 들리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유승민 원내대표를 여권의 동반세력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형국이다.

유 원내대표는 당이 국정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했고,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를 비판했다. "새로운 보수의 지평을 열겠다"고도 했다. 기존의 여당 원내대표들에게서 발견하기 어려운 중도 개혁의 참신함이 배어 나왔다. 새누리당의 우클릭에 대한 자기검열로서 자정(自淨)능력이 있는 집권당의 저력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념적 성향과 별개로 유 원내대표에 대해 호의적 평가가 적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당청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비박 투 톱의 지도부 입성 이후 여권 내 역학관계의 균열이 거부권 정국의 뇌관으로 작용했다.

박 대통령은 유 원내대표 취임 이후의 행보를 '정부 여당을 뒷받침 하는 정치가 아니라 자기를 위한 정치'로 판단한 듯하다. 공무원연금법 개정 협상 과정에서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청와대의 위헌소지 지적 등이 누적되어 나타난 결과가 박 대통령의 유 원내대표에 대한 직설적인 사퇴 요구다.

대통령제는 국민의 직접 선출로 구성된 입법부와 대통령의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에 입각한 충돌 가능성에 노출되는 권력구조다. 의회가 여소야대의 분점정부가 될 때 국정의 교착이 발생할 개연성은 한층 높아진다. 그래서 국정의 최고 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설득과 포용의 리더십이 절실해진다. 내각제는 의회 다수당과 연정으로 행정부가 구성되므로 의회와 내각의 융합이 일상적이지만, 대통령제는 입법ㆍ사법ㆍ행정부의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삼권분립이 더욱 강조된다.

집권당과 청와대, 행정부는 여권을 형성하는 국정주도세력이며 집권세력이다. 정당 소속 의원은 정당인임과 동시에 입법부를 구성하는 헌법기관이다. 각 기구의 역할과 위상이 민주적으로 인정되고 존중될 때 여권 내의 절제와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 입법ㆍ사법ㆍ행정의 수평적 관계 못지 않게 여권 내의 생산적 길항이 긴요한 이유다. 당과 청와대의 의사가 일치하지 않을 때 이를 조율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 역시 집권세력의 몫이다. 이에 대해 유 원내대표가 책임질 일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잘못도 가볍지 않다.

나치에 협력했던 헌법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의 본질을 적과 동지의 구별에서 찾았다. 정치적인 행동이나 동기의 연원은 결국 피아(彼我)의 구분이라는 말이다. 권력정치의 관점이다. 그러나 정치란 설득과 포용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치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 갈등을 최소화하고 관리하며 조정해 내는 것이 정치다. 권위주의 시대에 일상화되었던 정치적 배제는 탈정치에서 연유한다. 민주주의의 권력 원천은 투표다. 여당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한 원내대표를 몰아내려는 것은 또 다른 정치적 배제다. 대통령의 국회에 대한 비판은 또 다른 삼권분립 시비를 불러올 수도 있다. 탈정치와 정치적 배제는 군사권위주의시대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대통령과 집권당 원내대표를 대척에 두고 논한다는 자체가 한국적 대통령제에서는 가당치 않다. 더구나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를 대립 각으로 설정한다는 것은 한국정치에서는 비현실적이다. 메르스 정국에서 거부권 정국으로 쟁점 축 변경을 통한 국면전환이 진정한 승부수인지 무리수인지 권력정치적 관점에서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배신의 정치'가, 적과 동지를 구별해서 그 적에 대한 '배제의 정치'를 하려는 것이라면 '승부수'와 '무리수'는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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