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중병에 걸린 대한민국

한국일보 입력 2015. 6. 29. 20:32 수정 2015. 6. 29.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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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때 읽은 '사회과학입문'(다카시마 젠야 지음)이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회과학자는 사회의 의사'란 구절이었다. 저자는 사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사회과학자의 역할이라 했다.

지금 나라 모습을 보면 '사회의 의사'인 경제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이 중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는 대한민국이 중병에 걸렸음을 나타내는 가장 두드러진 증상이다. 여객선의 침몰과 치명적 역병의 확산이란 서로 다른 재난 속에서 우리는 무너진 낡은 국가 시스템을 보았다. 국가재난관리시스템과 국가방역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게 되었다.

참담한 두 대형사건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를 보았다. 이윤 추구에 눈이 멀어 승객의 안전을 무시한 운수 자본과 공익성보다 수익성을 우선시하여 방역을 경시한 병원 자본의 민낯을 보았다. 배가 침몰하자 승객보다 먼저 도망쳐 나온 선장의 무책임과 메르스 감염 의심자로 자가격리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골프치고 여행 다닌 시민의 무모함을 보았다.

허물어진 국가 시스템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중병의 실체가 드러났다. 대한민국이 걸린 중병은 여러 가지 병세가 겹친 합병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장 지상주의, 수익성 제일주의, 중앙집권체제, 관료주의, 무책임성 등이 그 병명들이다.

과거 개발독재 시절에 압축 경제성장을 추동한 것은 성장 지상주의였다. 성장 지상주의는 단기간에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하는데 기여한 특효약이었으나 그것은 생명, 안전, 환경, 인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성장 지상주의의 독성은 대한민국을 깊게 병들게 했다.

생명과 안전을 경시한 결과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가 발발했다. 의료 관광과 첨단 의료로 의료 산업을 진흥한다면서 공공의료에 대한 정부투자를 소홀히 한 결과 메르스 사태를 맞은 것이 아닌가? 의료수준이 세계 최고라 하지만 공공의료지출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수준이다.

수익성 제일주의가 횡행하여 공공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한국의 공공성은 OECD 33개국 중 꼴찌다. 육아, 교육, 의료, 양로 등 사람의 전체 생애주기에서 삶의 질 유지 향상에 필수적인 사회 서비스에서조차 공공성보다는 수익성이 중시되고 있다. 병원의 수익성 중시 경영이 메르스 조기 진압 실패를 초래한 요인중의 하나였다. 안전제일은 구호에 그치고 수익제일을 추구한 결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개발독재 시절부터 강화된 중앙집권체제는 국가시스템의 기능 부전을 초래한 중병의 원인이다. 중앙정부가 모든 핵심 사무를 다 관장하다 보니 어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권한과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중앙정부는 비만하여 무능력하고 권한과 자원이 빈약한 지방정부는 영양부족으로 무기력하다. 그 결과 비상사태에 대처하고 해결하는 국가 역량이 매우 빈약하다.

관료주의는 대한민국의 오래된 고질병이다. 상명하달의 비민주성, 획일성과 경직성, 전문가 배제와 현장 무시 등 공직사회에 만연한 관료주의의 병폐는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막을 골든 타임을 놓치고 우왕좌왕했던 정부의 대응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무책임성은 정부, 정치권, 기업, 시민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중병이다. 역대 정부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책임 있는 국정을 수행하지 못했다. 정치권은 합리적 국가시스템 구축을 위한 입법 활동을 소홀히 했다. 기업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에 소홀했고 노동자와 시민들은 권리의식은 강했지만 책임의식이 약했다.

나라가 중병에 걸려있는데도 여야 정치권은 '친박-비박, 친노-비노'의 4색 당파로 갈라져 소모적 정쟁을 계속하고 있다. 누가 어떤 정부와 정치세력이 이 만성 중병을 치료하여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것인가?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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