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토론하고 생각하며 "우리들은 자란다"

2016. 5. 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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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어린이가 만든 esc
이병학 선임기자의 ‘어린이명예기자단’ 취재·기사 작성 과정 관찰기

‘비속어 사용 실태’를 취재한 서울 자운초 6학년 4반 한도현·남경민·김예지 어린이(왼쪽부터).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4월22일 오후, 수업을 마친 서울 창동 자운초등학교 6학년 4반 교실이 떠나갈 듯 소란스러워졌다. 동시다발적 고음의 재잘거림으로 귀가 아플 정도였다.

“어린이 안전체험센터를 체험해보고 소감을 쓰면 어떨까?” “말고, 담임 선생님 애인을 알아내서 인터뷰하는 거야. 재밌잖니?” “요즘 덥잖아, 학교 앞 빙수가게 취재해서 그 맛을 알려주는 건 어때?” “아냐, 딴거 해, 딴거!”

어린이명예기자의 취재 모습.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어린이 기자 지원자 많아 학급 투표로 결정

김예지·김형진·남경민·변유정·신두희·이진수·장상규·한도현·한예지, ‘위대한 미래를 향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자운 어린이’ 9명이 둘러앉아 왁자지껄한 ‘기사 기획회의’를 하는 중이다. 이틀 전 <한겨레> esc의 ‘어린이명예기자’ 모집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참가한 어린이들이다. 담임교사 우서희 선생님은 “지원자가 너무 많아, 각자 기사 주제를 발표한 뒤 투표로 9명을 뽑았다”고 귀띔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선생님은 “옳지,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기자가 됐다고 생각을 해봐” 하며 거들 뿐 간섭 없이 지켜봤다. 일부 아이들은 시계를 보며 “아 짜증, 벌써 학원 갈 시간”이라며 조바심을 쳤다. 9명이 3명씩 3조로 나뉘어 2시간 가까이 토론한 끝에 3건의 ‘취재 기획안’이 정해졌다. “자, 그럼 한 팀씩 결정된 주제를 발표해봅시다.”

‘주말에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취재한 신두희·김형진·변유정 어린이(왼쪽부터).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열띤 기획회의로 조별 취재 아이템 정해

아이들 몇 명은 학원으로 떠나고, ‘이진수·장상규·한예지’ 조가 먼저 발표했다. “우린 친구들 사이에 좋아하는 행동과 싫어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것을 알면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변유정·신두희·김형진’ 조는 “학원 가느라 주말에 놀지도 못하는 친구들이, 주말에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지를 조사할 생각”이라고 했고, ‘한도현·남경민·김예지’ 조는 “친구들이 비속어와 줄임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어떤 것들을 많이 쓰는지 설문조사해 기사로 쓰겠다”고 했다.

‘기삿거리’를 잡은 아이들은 모두 의기양양한 표정들이다. 선생님이 마무리했다. “잘 정해진 것 같다. 조별로 열심히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사진도 찍어서, 다음주 수요일 방과 후에 다시 모여 이야기해보자.”

‘가장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취재한 한예지·장상규·이진수 어린이(왼쪽부터).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취재 거부’ 등 난관 딛고 주변 도움 없이 진행

며칠 뒤 다시 만난 아이들 표정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업 마치고 학원 가랴, 숙제하랴, 취재하랴 얼마나 바빴을까.

“아 정말…. 취재를 거부하는 애들 땜에 골치가 아파요. ‘안궁’(안 궁금함)이라며 그냥 씹어요.”

“1~2학년 애들은 진짜 말이 안 통해요. 쫌 귀엽긴 해도.”

“어떤 애는요. ‘난 착하거든~, 욕 안 하거든~’ 이러고요. 어떤 애는 ‘나대지 마라~’, ‘푸흡’ 이런 것도 욕이라고 우긴다니까요.”

“공원에 취재를 갔는데요. 1시간 동안 개미 하나 안 나타나서 황당했어요.”

끝없이 쏟아내는 어린이 기자들의 ‘취재 고생담’ 열기로 교실 안은 뜨겁게 달아올라 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조별로 조사하고 인터뷰해 온 10~100여명의 친구들 답변을 분류하고 통계를 내어 수첩에 옮겨 적었다.

“자, 이제 조사한 내용을 조별로 상의해서, 2000자 정도로 기사를 써오세요.” 선생님은 “신문 독자들에게, 여러 친구들의 생각을 잘 알릴 수 있게 써보라”며 “주변 도움을 받지 말고 여러분 생각대로 느낀 대로 쓰라”고 당부했다.

설문지를 작성중인 어린이.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진지하게 고민하고 협력하며 취재 ‘감동’

이렇게 해서, 아이들과 4번의 만남 끝에 세 꼭지의 야심찬 어린이명예기자단 기획기사가 만들어졌다.

‘진짜 신문기사’를 쓴다는 중압감 때문인지, 자유분방하고 생기발랄한 서술이나 표현은 예상보다 덜했지만, 서로 상의하고 토론하며 쓸 내용에 대해 합의를 이뤄가는 모습과, 설문지를 만들고 한 명 한 명 만나 취재해가는 과정은 감동을 안겨줬다. 조사한 내용을 학년별·남녀별·내용별로 분류하고,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며 문제점을 드러낸 뒤 나름대로 평가를 곁들인 것도 좋았다. 한 조는 기사에 그래프까지 곁들여 돋보였다.

어린이명예기자들의 소감은 어떨까. “해보니, 기자가 되면 진짜 재밌고 보람있을 거같아요.” “평소 못 했던, 모르는 애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재밌었고요.” “처음엔 뭘 해야 할지 몰랐는데, 서로 협동해서 하니까 잘됐어요.” “다른 여러 친구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담임교사 우서희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있는 어린이명예기자단.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비판적 사고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 됐을 것”

아이들의 토론·취재 과정을 지켜본 우서희 선생님은 “아이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비판적 사고를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였다”며 “6학년에겐 어린이로 맞는 마지막 어린이날인데, 기자 활동으로 장식해 정말 뜻깊은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 협조에 감사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오는데 선생님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고민하고 취재하는 모습을 보니, 이 중에서 정말 훌륭한 신문기자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린이명예기자단 9명이 따로 보내온 ‘내가 진짜 기자가 된다면’(보조기사 참조) 내용을 보면, 선생님 말씀이 실감 난다.

어린이 여러분, 각자의 희망 꼭 이루길. ‘어린이날’ 축하축하!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 관련 기사 : “기자가 된다면요? 나쁜 사람 혼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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