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한국사회] 결핵과 메르스의 흉터 / 손아람

2015. 7. 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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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61년, 쿠데타로 집권했던 박정희 정권은 정당성 치유의 방편으로 강력한 사회보건 정책을 펼쳤다. 한국전쟁 이후로 크게 창궐한 결핵의 관리사업이 그 가운데 하나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61년부터 의사시험에 결핵전문의 과정을 추가하는 법률이 도입되고 결핵관리소의 설치가 논의되는 등 다양한 주요 국가결핵관리 사업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현재까지도 전염 경로가 노숙인, 외국인 근로자, 수용시설이나 오·벽지 거주자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결핵은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사회 취약 계층이 위험에 크게 노출된 질병이다. 그래서 실질적 효과를 거둘 더욱 강력하고 강제적인 결핵 예방 정책이 시행되는데, 결핵감염자의 격리수용과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의무적 결핵 예방백신 재접종 정책이 그것이다. 30대 이상의 국민이라면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려 올지도 모르겠다. 바로 '불주사' 말이다.

불주사는 왜 불주사인가. 말 그대로 주삿바늘을 알코올램프의 불로 가열하여 소독한 뒤 다시 사용했기 때문이다. 열소독한 주사를 접종받은 뒤에는 화상과 면역 반응의 복합으로 피부가 함몰되는 커다란 흉터가 생긴다. 그런데도 이렇게 가열한 주삿바늘을 재사용한 이유는 단지 전국 아동을 대상으로 실시된 대규모 재접종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였다. 결핵균은 열소독으로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해외 국가의 경우 마약 환자의 결핵 감염 빈도가 매우 높은 것 역시 환자들이 열소독한 주삿바늘을 재사용하여 약물을 체내에 투입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정확한 감염 경로 추적이 불가능하지만, 한때 결핵 보균자가 국민의 절반이었으므로 정부가 강제적으로 시행한 재사용 바늘 불주사 접종으로 인해 도리어 결핵균에 감염되어 사망한 환자가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환자들의 사인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결핵으로 죽었고, 결핵을 죽이려다 죽었고, 결핵과 함께 죽은 사람. 그들은 이 나라의 결핵이었던 걸까?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소아에 대한 결핵 예방백신 재접종의 효과가 의학적으로 전혀 입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부 위험성마저 보고되어 왔다는 사실이었다. 1995년 세계보건기구는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강제적 재접종을 중단하라고 권고했고, 1997년부터 과거 전국의 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불주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에게는 불주사 흉터가 없다. 전염병 관리사업의 형태는 집권 정부의 성격을 민망하리만치 투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의 결핵관리정책이 그 통치의 방식과 비슷하게 막무가내로 강행되었다면,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응은 경제정책기조와 똑같이 자유주의적 방임에 가까웠다. 초기 환자의 진단과 관리, 그리고 책임은 개별 병원에 완전히 맡겨졌으며 중앙의 통제는 질병 그 자체보다는 부정적인 여론의 확산을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메르스 확산세가 한풀 꺾였다니 다행이지만, 초기 통제만 제대로 수행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감염자 수십명의 죽음을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사망한 환자의 사인은 또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 죽음은 의학적 사망인 동시에 사회적 사망이다. 지난 한 달간 벌어진 일들은 세월호 침몰 초기 대응에 실패해 발생한 300여명의 죽음처럼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흉터로 남을 터다.

여름이 시작됐는지 며칠 전부터 길거리에서 민소매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중년 남녀의 어깨에만 남은 똑같은 모양의 흉터가 눈에 띈다. 불주사 자국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어쩌면 저것은 흉터라기보다 차라리 유전자라고. 피부가 아니라 역사에 새겨진 낙인이라고.

손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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