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독성(毒性)

황영식 2015. 5. 2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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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감자가 나왔는데도 감자 값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가뭄이 심해 작황이 좋지 않은 데다 수요가 늘어나서라고 한다. 개중에서도 '허니버터칩'의 폭발적 인기가 으뜸가는 이유라고 한다. 감자를 구황(救荒) 식품쯤으로 여기던 생각이 영 멋쩍다. 어릴 적 여름철이면 보리밥에도 으레 감자가 섞였다. 아예 밥 대신 삶은 감자를 으깨어 먹기도 했다. 국과 찌개에도 자주 들어갔다. 어떻게든 탄수화물 섭취를 늘려보기 위해서였다. 그랬던 감자가 '독립 식품'으로 인기를 끌며 세상 변화를 새삼 일깨운다.

▦ 감자의 인기는 세계적이다. 옥수수와 밀, 쌀에 이은 4대 식품으로 꼽힌다. 남미 원산인 감자는 16세기 후반 유럽에 전해졌지만 한동안 '악마의 식품'으로 불리며 기피됐다. 솔라닌(Solanine)이란 독성 물질 때문이다. 아린 맛의 성분으로 구토와 식중독, 두통 등을 부른다. 싹 주변이나 햇볕에 노출돼 녹색으로 변한 껍질에 특히 많지만, 속살에도 들어있다. 물에 삶으면 무독화(無毒化)하지만 굽거나 튀겨서는 소용이 없다. 그런 지혜의 축적을 거쳐 감자는 주식(主食)이 됐고, 19세기 유럽의 인구 팽창을 뒷받침했다.

▦ 솔라닌은 감자뿐만 아니라 토마토나 가지 등에도 들어있다. 꼭 솔라닌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독성 물질이 들어있는 야채는 의외로 많다. 취나물이나 고사리, 두릅, 다래 순 등 삶거나 데쳐 먹어야 아린 맛을 덜 수 있는 산채는 모두 독성 물질이 있다고 봐도 된다. 삶거나 찌고, 말려서 먹는 전통의 식습관을 물려준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그래야 영양도 풍부해지고, 독성도 약화한다. 설사 독성이 완전히 빠지지 않더라도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 ▦ 독성은 약용 성분과 마찬가지로 일정량 이상을 섭취해야만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 독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어느 수준인지, 대개 얼마나 섭취하는지가 문제다. '가짜 백수오'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은초롱의 뿌리인 백수오 대신 모양이 비슷한 이엽우피소의 뿌리인 격산효(토백렴)를 넣은 건강식품이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가짜를 진짜처럼 속인 사기꾼 심보는 혼내어 마땅하다. 다만 건강피해 운운은 독성 확인 이후의 일이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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