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12월 10일] 나혜석

한국일보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정월 나혜석(1896~1948)은 1948년 12월 10일 서울 원효로 전 용산구청 자리인 서울시립 자제원(慈濟院)에서 행려병자로 사망했다. 이 신원 미상의 무연고자는 영양실조에다 실어증 중풍환자로 기록됐고, 실제 나이보다 10여세 많은 65~66세로 추정됐다. 그의 비참한 죽음은 나혜석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火(화) 花(화) 畵(화)>의 작가 정을병(1934~2009)에 의해 1978년에야 확인됐다.

■ 화가 문인이었던 나혜석은 독립운동도 했지만, 무엇보다 "여자도 인간이다."라고 주장한 선구적 여성이었다. 그의 면모는 신문기자였던 미술평론가 이구열 씨의 일대기 <에미는 선각자였느니라>가 출간된 1974년 이후 다각도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1995년 '미술의 해'에 수원의 생가 터에 표석이 설치됐고 2000년 2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됐다. 1999년에 결성된 기념사업회는 '나혜석 학술상'을 제정하고 수원에 나혜석거리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올해 9월에는 나혜석학회도 창립됐다.

■ 그런데 수원시가 짓기로 한 나혜석 기념관은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수원시는 당초 생가를 복원하려 했으나 장소가 불명확한 데다 그의 아버지가 친일파여서 부적절하다는 반대에 부딪혔다. 기념관에 대해서도 행안부 중앙 투ㆍ융자심사위원회는 올해 7월 여론 수렴과 타당성 조사를 하라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그 인근에 건립키로 한 수원미술관과 내용이 중복되는 점도 있어 1년 넘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결국 수원시는 내년 1월까지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 통합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 문화인물은 돈이 되는 관광상품이니 사업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기념사업은 한 인물의 바른 이해와 해석에 기여해야 한다. 나혜석은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고자 했으나 끝내 실패한 여성이었다. 같은 시기에 여성화가로 주목 받았던 백남순(1904~1994)과 대조적이다. 부부화가였던 백남순은 6ㆍ25 때 남편이 납북되고 작품이 다 불에 타버린 점에서는 불우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삶은 매우 달랐다. 나혜석의 64주기인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여성의 삶과 인권을 생각해보게 된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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