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12월 8일] 장서표

한국일보

사람들은 책을 사면 가장 먼저 자신의 이름을 써서 '내 것'임을 표시한다. 보통은 보이지 않는 곳에 써놓지만, 교재의 경우 다목적으로 아예 표지나 모서리에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써놓는 대학생들도 많다. 한눈에 누구 책인지 알 수 있고, 훔쳐가는 것을 막고, 분실하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책이 귀하던 과거에는 아예 장서표(藏書票)를 따로 만들었다. 주인의 취미에 따라 문장(紋章)이나 초상, 풍경, 도안을 판화로 제작해 책 표지 안쪽에 붙였다.

■장서표는 15세기 후반 독일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폭넓게 사용된 것은 인쇄술이 본격 발달한 19세기 후반부터다. 유럽의 문호 빅토르 위고, 영국 배우 찰리 채플린의 장서표가 유명하다. 종이에 판화를 찍어 책에 부치는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17세기부터 도장을 책에 직접 찍는 장서인(藏書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여 년 전, 한 지인으로부터 한자 이름을 새긴 큼지막한 도장(장서인)을 선물로 받아 한때 열심히 책에 그것을 찍은 기억이 있다.

■장서표라고 멋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국제적 공통표시로서 '~의 장서'란 의미의 라틴어 'Ex-libris'와 함께 소장자의 이름을 넣어야 한다. 우편엽서만한 것도 있지만 크기는 보통 5~6㎝. 주인의 취향에 따라 주소나 구입 연도, 책 내용과 관련한 시, 격언, 경구를 적기도 한다. 장서표는 직접 제작하면 좋지만, 재주가 없으면 판화작가에게 맡긴다. 15세기 독일의 알프레히트 뒤러와 루카스 크라나흐, 20세기 프랑스의 피에르 보나르 등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장서표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전시, 수집, 교환되기도 한다. 영국 대영박물관도 장서표 20만개를 소장하고 있다. 대산문화재단이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12일까지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장서표로 읽는 대산문학상 20년'을 열고 있다. 국내 최초로 1995년 장서표전을 열기도 한 목판화가 남궁산이 제작한 문인 70여명의 장서표가 전시되어 있다. 이청준의 새, 황석영의 호랑이, 김훈의 자전거가 그들의 문학세계를 엿보게 만든다. 장서표 역시 작가의 얼굴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www.hankookilbo.com (무단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