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명예퇴진 / 김종구

입력 2015. 7. 1. 18:50 수정 2015. 7. 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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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리나라 인권변호 역사의 산증인이자 국민의 정부 시절 감사원장을 지내기도 한 한승헌 변호사는 평소 유머와 해학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분이다. 그가 모교 대학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축하모임에서 인사말을 하게 됐다. "그냥 박사도 명예스러운데, 명예박사라서 훨씬 더 명예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찬 자리에서 "실은 가짜 박사라 쑥스럽다"고 했더니 동석한 교수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짜 박사보다 희소가치가 있으니 명예박사는 진짜보다 귀한 박사입니다."

명예박사, 명예영사, 명예시민 등에 쓰이는 명예는 말 그대로 명예(이름)만 있을 뿐 특별한 요건이나 권리, 의무가 수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어(honorary)로도 명예스러운(honorable)과는 다르다. 실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자신을 '박사'라고 내세우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외국의 일부 대학에서는 아예 명예박사 학위 수여자들에게 "이름 앞에 박사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삼가달라"는 정식 요청을 하기도 한다. 물론 벤저민 프랭클린처럼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뒤 자신을 스스로 "프랭클린 박사"라고 부른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앞에 명예가 붙은 직함은 아무나 쉽게 얻을 수 없는 명예로운 자리임이 틀림없다. 여기에 비하면 같은 명예라도 '명예퇴직'의 명예는 완전히 딴판이다. 이것은 '조기 퇴직'을 듣기 좋게 윤색해 놓은 말장난에 불과할 뿐 명예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현실에서는 그나마 '자발적 퇴직'도 거의 없이 '사실상 강제퇴직'이 넘쳐난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놓고 '명예퇴진' 운운하는 목소리가 새누리당 안에서 나오고 있다. 명예라는 말의 심각한 오·남용이다. 명예퇴직에는 그나마 위로금 등 보상책이라도 있지만, 지금 청와대와 친박계는 유 원내대표를 완전히 발가벗겨서 내쫓으려고 안달이다. 누가 봐도 '불명예 강제축출'이 분명한데 엉뚱한 말장난까지 하고 있으니 더욱 쓴웃음이 나온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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