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책 속에서 찾은 것

입력 2016. 6. 2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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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 14년 동안 이사를 여섯 번 다녔다. 한집에서 2년 전세계약 연장을 한 번 더 해서 4년 살았던 것 빼곤 2년마다 옮겨 다닌 셈이다. 집주인들이 2년만 지나면 집값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할 때마다 이사 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했다. 중간에 내 집을 마련해보겠다고 애쓰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남편과 내 이름으로 아파트도 분양받아 보았지만 그마저도 2년만 살다 팔게 되었다. 형편에 따라 조금씩은 다른 선택을 하고 살겠지만, 대한민국에 사는 월급생활자들의 전세생활은 다들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이사 갈 때마다 큰 골칫거리는 책이다. 세간도 잡스럽게 늘어가지만 살아갈수록 쌓이는 것은 나무를 베어 만든 무거운 종이뭉치들. 이삿짐 나르는 분들에게 제일 눈치 보이고 민망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여섯 번의 이사 중에 한 번도 책에 대한 짜증 섞인 질문을 안 들어 본 적이 없다. “왜 이렇게 책이 많아요? 바깥분이 뭐 하시는 분이에요?” 나는 딱 봐도 책 안 읽게 생겼는지, 아니면 책이란 ‘남자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럴 때 나는“제 책이에요”라고 말해버린다. 그 후 돌아오는 더 이상한 의혹의 눈빛과 다음 질문. “그럼 이 책들 다 읽으셨어요?”

30도가 훌쩍 넘는 8월 초,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12월 초에 이사를 많이 했는데. 날라도, 날라도 끝이 없는 책 박스 때문에 힘들고 짜증나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는 저 책들을 다 읽지 않았다. 앞으로 봐야 할 책들이 다 읽은 책보다 많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다 읽은 책 중 필요 없는 것은 여섯 번의 이사를 통해 용달 한 트럭만큼은 버렸다.

4년 전, 처음 내 명의로 된 아파트로 이사 와서 책 정리를 하며 책 속에서 놀라운 것을 찾았다.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책갈피 사이에서 이십 만원을 발견한 것이다. 십 만원은 구권이고, 십 만원은 지금 통용되고 있는 신권이었다. 언제 어떻게 생겨서 왜 거기다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새 집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책 정리하는 게 싫어서 그 이십 만원으로 에어컨 설치비를 내고 말았다.

유형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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