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정선, 청령포

입력 2016. 6. 2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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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강원도 정선 근처를 지나다가 네 생각이 났다. 청령포에 가자고 나섰다가 영월이 아니라 엉뚱하게 정선에 갔던 날의 기억도. 너는 곧 다른 나라로 떠날 예정이었고, 떠나고 나면 언제 한국에 돌아올지 기약이 없었다. 영월에 가지 못하고 정선으로 간 것은 나의 착각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청령포의 그림 같은 풍광 사진을 보고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었고, 네가 떠나기 전 아무 목적 없이 시간과 마음을 함께 쓸 수 있는 하루가 주어졌을 때, 나는 문득 그 바람을 떠올렸다.

정선에 들어서자 내가 지명을 혼동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다시 목적지를 바꿀 시간도 의욕도 사라진 우리는 정선역 앞 식당에서 콧등치기라는 음식을 먹었다. 된장을 푼 얼큰한 국물에 메밀을 반죽해서 뽑은 국수가 들어 있었다. 이름이 알려진 곳이었는지 식당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먹고 있는 메밀전병이 맛있어 보였고, 그래서 너는 주인아주머니를 불러 같은 것을 주문했다. 아주머니는 지금 막 반죽이 떨어져서 새로 만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말했다. 너는 잠시 망설이더니, 그럼 다음에 와서 먹겠다고 대답했다.

정선은 뒤로는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고, 나머지 시가지를 강이 에워싸 흐르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강둑까지 걸어나가 벤치에 앉았다. 늦가을이었으므로 공기는 쌀쌀했으나 등과 어깨에 쏟아지는 햇볕은 따스했다. “밝고, 한적하고, 따뜻한 곳이네. 한 십년 뒤 한국에 돌아오면 여기 와서 살아야겠다. 집값도 무지 싸겠지?” 너는 그렇게 말했다.

네가 떠난 지 십 년이 지났고, 정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네가 했던 말들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산골에 들어가 살고 싶은 헛된 바람이 나에게도 있어서 산과 물이 좋은 곳에 가면 슬쩍 땅값을 물어보곤 한다. 언젠가 네가 돌아오면 정선에서 살 수 있을까. 집값은 네 예상과 달리 많이 올랐더라. 그래도 메밀전병쯤은 먹을 수 있겠지.

부희령(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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