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모내기/박홍기 논설위원

2016. 5. 30. 03: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신문]물이 찬 하얀 들판이 파랗게 바뀐다. 파릇파릇 싹이 돋아난다. 겨우내 황량했던 들판에 물이 차더니 생명의 기운을 되찾은 것 같다. 이앙기가 지나갈 때마다 파란 뗏장이 입혀진다. 모내기다.

참 세상 좋아졌다. 모내기 땐 동네가 시끄러웠다. 집안 식구들이 전부 나섰다. 동네 어른들은 품앗이를 나왔다. 애들도 한몫했다. 어른들이 허리를 펴면 논둑에서 잡고 있던 못줄을 옮겼다. 줄지어 늘어선 어른들의 손놀림은 신기했다. 동시에 심고 똑같이 일어났다. 못줄이 정확한 간격으로 이동할 때마다 논의 빛은 점점 파래졌다.

요즘 모내기엔 애들이 없다. 못줄도 없다.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어른들은 못자리 논에서 모판을 꺼내 이앙기에 얹어 놓는 일을 맡을 뿐이다. 예전보다 많이 편해졌다. 일일이 모를 뽑아 묶을 필요도 없다. 규격화된 모판에서 모가 자라서다. 그런 만큼 동네도 조용하다.

넓은 논이 모로 채워질 즈음 멀찍이 머리에 이고 든 모습이 들어온다. 새참이다. 달려가 받아 든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풍경이다. 땀을 훔치며 모두 그늘 아래 둘러앉는다. “올 모내기는 좀 빨랐네.” 파릇한 모들이 바람에 날린다. 산에선 뻐꾸기가 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부담없이 즐기는 서울신문 ‘최신만화’ - 저작권자 ⓒ 서울신문사 -

Copyright © 서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