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새벽은 온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달 22일에 영면했다. 이로써 유신독재에 당당히 맞섰던 양김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다음날로 반대 성명을 내며 해외에서 민주화투쟁을 벌였다. 1973년에는 중앙정보부에 납치되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엄혹한 유신체제에 숨죽이던 사람들이 본격적인 반유신투쟁에 나섰다. 이듬해 김대중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유신정권의 불허로 부친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를 ‘천추의 한’이라 썼다. 1979년 두 번째로 신민당 총재에 오른 김영삼은 10월4일 여당인 공화당의 단독 표결로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신체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부마항쟁이 일어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졌다.
국가장 중이던 지난달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달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이슬람 테러분자와 연관 짓는 발언을 하여 국민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게다가 립서비스, 위선, 직무유기 등의 단어를 써가며 국회를 맹렬히 비판했다. 조문 정국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강경 발언이었다.
내년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예정이고 친박은 개헌카드를 내놓았다. 그렇기에 권력의 영구적 독점을 목표로 했던 유신체제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유신의 전조, 즉 유신으로 가는 건널목에는 1967년 국회의원 선거와 1969년 삼선개헌이 자리하고 있었다.
1967년에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박정희가 윤보선을 누르고 재선했다. 국민은 사분오열을 거듭하며 혁신하지 않는 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다. 한 달 뒤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는 1960년 3·15부정선거에 버금가는 타락상을 보였다. 대통령과 공무원이 직접 선거운동에 나섰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을 순회하며 선심공약들을 내놓았다. 삼선개헌에 필요한 개헌선을 확보하기 위한 무리수였다. 결국 공화당이 개헌선을 훌쩍 넘는 129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학가의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신민당은 다섯 달이 넘게 국회 등원을 거부했다.
이듬해인 1968년에는 공화당의 대권 후계자로 거론되던 김종필이 박정희의 압박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1969년 벽두부터 박정희가 삼선개헌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전국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결국 9월14일 새벽 2시38분경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하는 야당의원들을 따돌리고 여당의원들만이 국회 제3별관에 모여 삼선개헌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유신의 전조, 즉 부정선거와 날치기 개헌에 기반을 둬 영구집권의 길을 다진 것이다. 삼선개헌안은 국민투표 결과 65.1%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서울만은 반대표가 50.4%로 과반을 넘었다. 신민당은 부정으로 얼룩진 최악의 관권선거라며 무효투쟁을 벌였다.
유신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야당의 체질 개선과 세대교체를 내용으로 하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야당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 나설 신민당 후보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자유 경선에 의해 선출되었다. 김대중이 김영삼을 누르고 역전승을 거두었다. 김대중은 이번 선거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지 못하면 영구집권의 총통제가 실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김대중을 94만여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위수령과 비상계엄령을 거쳐 영구집권이 가능한 유신체제를 탄생시켰다.
유신체제하에서 야당은 독재에 맞서는 선명 야당으로 거듭났다. 1974년 45세의 나이에 신민당 총재에 오른 김영삼은 유신정권을 향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결사 항쟁’ 의지를 밝혔다.
유신체제의 탄생과 붕괴 과정에서 야당 지도자로서 국민과 함께했던 문민 대통령을 보내며 해묵은 상식 하나를 꺼내어 오늘에 비춰 본다. 국민이 깨어있고 야당이 ‘선명’해야 새벽은 온다.
<김정인 | 춘천교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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