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이분법'에 갇힌 박근혜의 정치
“정치적인 행동이나 동기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특정한 정치적 구별이란 적과 동지의 구별이다.”
히틀러의 나치에 협력한 죄과로 은둔의 말년을 보내야 했던 독일의 사상가 슈미트(Carl Schmidt)의 1932년판 <정치적인 것의 개념>(김효전·정태호 옮김)의 한 구절이다. 한국정치의 현실이 회고적 독해를 하게끔 한다. 박근혜 정부의 말과 행동은 적과 동지의 이분법에 충실하다.박근혜 정부의 의제선점 능력은 본능적인 정치적 실천을 위한 유용한 자산이다.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는 노무현 정부가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으로 적 만들기를 하며, 동시에 그 적이 설정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의제를 전유했다. 선거과정에서 그들의 정치적 실천이 빛을 발했다. 박근혜 정부의 의제전환 속도도 슈미트식 정치에 한몫을 한다. 연속해서 다른 의제를 제기, 적으로 규정된 세력에게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적의 무력화, 고립화, 악마화를 추진한다.
노동개혁과 역사교과서 국정화란 의제설정은 예외상태를 현실화하는 수순이었다. 노동개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없애고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외양을 가진 담론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갈등당사자인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위대의 광장정치는 이슬람국가(IS)의 테러리스트와 비유되고 민주노총이 없었다면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추가된다. 여당의 타자인 야당에도 위선과 직무유기라는 칼날의 말을 던진다. 단기적인 정치적 계산을 한다면 정권의 입장에서도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란 의제에서 적과 동지의 구별은 절정에 이른다. 역사연구자 다수를,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국민을 좌파로 규정해 적으로 만든다. 국정의 역사관이 없다면 통일이 되기도 어렵고 통일이 되더라도 사상적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언명은 한국정치가 사실상 예외상태에 돌입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국의 교과서가 북한의 교과서처럼 되어서는 안된다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합의라는 역설적 부수효과를 획득했지만, 결국은 교육부의 행정예고를 통해 북한과 닮은꼴의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길을 가고 있다. 예외상태를 현실로 만드는 순간이다.
슈미트는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예외상태에서 나치와 공산당의 의석이 증가하자 그들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제약할 것을 요구했다. 순수한 형태로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적을 섬멸해야 한다는 발상이었다. ‘국가지상주의’의 극단이었다. 결국 슈미트는 어떤 정치세력보다 적과 동지의 구별을 실천했던 나치에 투항한다. 그러나 나치가 적과 동지가 아니라 민족공동체를 정치적인 것의 본질로 재정의하게 되었을 때, 슈미트는 실각한다(김항, <정치신학> 해제>).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만약 국가 내부에서 당파정치적 대립이 완전히 정치적 대립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면 그때 ‘국내 정치적인’ 경향은 최고도에 달한다”고 말한다. 사실상의 ‘내전’(內戰)의 도래에 대한 승인이다. 그리고 예외상태에서 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방책으로 ‘독재’를 제안한다(<정치신학>). 정치적인 것이 적과 동지의 구별이라는 단순도식의 논리적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 비극적 예측에 맞서야 할 시점에 있다. 정치적인 것이 적과 동지의 구별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공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즉 정치를 재정의하는 인정투쟁의 서막이 다시 올라야 한다.
<구갑우 | 북한대학원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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