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민주주의를 가린 권력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2015. 11. 2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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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3일 파리에서 최악의 테러참사가 일어났다. 이슬람국가(IS) 무장 세력이 민간인들에 대해 무차별 살육을 감행했고 130명이 사망했다. 사건 직전 러시아 여객기의 공중폭파도 이들의 소행이며, 향후 더 큰 테러까지 예고했다. 피해당사국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테러의 어원과 역사적 기원이 프랑스라는 것은 우연이지만 섬뜩하다. 공포를 뜻하는 ‘테러(terrorisme)’라는 단어는 프랑스혁명기의 급진파 자코뱅의 리더였던 로베스피에르가 휘둘렀던 ‘공포정치(reign of terror)’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는 혁명의 정의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자신을 반대하는 정적을 무차별 암살하거나 단두대에 올려 잔인하게 참수했다. 이렇게 원래 국가의 테러를 지칭하던 것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소수의 집단이 이념이나 종교, 그리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다수나 국가를 타격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다.

테러의 뜻이 변하고, 대상이 옮겨갔다고 하지만, 국가에 의한 ‘원조’ 테러행위는 20세기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자코뱅이 권력유지를 위해 반대파들을 향해 휘둘렀던 것처럼, 현대의 독재자들도 같은 길을 걸었다. 독재자들이 반대파와 국민들을 억압하는 행위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도 무수히 더럽혔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극복한 줄 알았던 국가테러의 공포가 다시 우리 주위를 맴돌며 부활을 꾀하고 있다. 게다가 20세기 새로운 유형의 테러가 던지는 공포분위기에 편승하는 교묘함까지 가지고 있다.

파리 테러 바로 다음날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다. 한 농민대표가 경찰의 물 대포 진압에 의해 쓰러진 후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전 세계가 복면 뒤에 숨은 IS 척결에 나선 것처럼 우리도 복면 뒤에 숨은 불법시위를 척결해 무법천지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분노와 함께 똑같은 말을 쏟아냈다. 우리는 지금 국민을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정부를 목도하고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처음은 아니며, 익숙한 역사의 반복이다. 그중에도 1980년 광주항쟁과 2009년 용산참사는 국가테러가 얼마나 끈질기고 잔인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누가 누구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가? IS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공공의 적’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시위자들을 이들과 동일시한다. 이 정도의 비약과 왜곡을 용납한다면, 뉴욕타임스의 최근 지적처럼 남북한의 비민주성에 더 이상의 차별이 없어졌다는 말도 두말없이 수용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국민의 뜻이라고 해왔지만, 그들에게 국민이란 무슨 짓을 해도 무조건 지지할 사람들만 가리키는 것 같다.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며, 척결의 대상일 뿐이다. 일부 불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대국민 적대감과 마녀사냥은 민주주의 원칙을 근본부터 붕괴시키고, 국가에 의한 테러를 강화시킬 위험이 있다.

‘권력’과 ‘권위’는 구별된다. 전자는 정당성과 분별이 부재한 생짜의 힘을 말하고, 후자는 정당화된 힘을 말한다. 혈통이나 종교로 정당화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오늘날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의 뜻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한다. 자코뱅이 프랑스혁명의 정당성을 지니고 탄생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오히려 인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생짜 권력을 마구 휘둘렀던 것은 더 이상 정당한 권력이 아니다.

주권자를 졸(卒)로 보는 대한민국의 현 권력은 본분과 한계를 잊은 채 역사를 후퇴시키려 한다. 역사해석까지 독점하고 국민을 계몽(?) 대상으로만 보는 한 우리는 그들에게 섬겨야 할 국민이 아니라 신민일 뿐이다. 시위대가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다면, 권력은 민주주의를 가려버린 것이다.

문명이 건강하다면 IS의 테러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가 유효하다면 이런 오만한 권력의 생명은 길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위안을 삼고, 희망을 걸어본다.

하지만 현실은 세계의 공분에도 불구하고 IS 격퇴는 쉽지 않을 것이며, 비민주주의 정권의 민주주의 훼손을 멈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IS 테러는 강대국의 이권 다툼과 오랜 이슬람 소외가 낳은 괴물이며, 국민을 상대로 하는 테러전은 사적 권력욕과 무비판적 추종자들의 맹목적 연대가 낳은 괴물이기 때문이다. 그 고리를 끊지 않는 한 해결은 요원하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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