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버밍햄 감옥과 조계사
“정의로운 법은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정의롭지 않은 법은 불복종하는 것이 정의를 지키는 것이다.”
미국의 흑인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은 1963년 <버밍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에서 자신이 불법시위에 나선 이유를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당시 앨라배마주 버밍햄은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흑백차별 도시였고 킹은 연좌운동, 평화행진, 흑백 분리 버스 보이콧 등 다양한 인권운동을 감행하다 투옥된다. <버밍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는 킹이 자신을 극단주의자, 범법자, 무정부주의자로 비판한 8명의 백인 목사에게 보낸 글이다. 킹의 불복종운동에 대한 강한 신념은 ‘법을 지키는 것이 곧 정의’라고 믿어온 백인교회에 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당시 백인교회는 인종차별에 반대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을 지키면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문했다.
킹은 불법시위를 중단하고 협상에 나서라는 일견 합리적인 주장에 “협상이 좋은 해결방법임이 분명하며 우리의 시위 목적도 긴장감을 고조시켜 당국이 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데 있다”고 응수했다. 그는 “우리가 사랑하는 남부지역에서는 너무나 오랫동안 대화 대신 비극적인 독백만 이뤄져왔다”고 했다. 불법시위보다 먼저 그 원인인 비극적 독백에 주목하라는 킹의 메시지는 우리에게도 강한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제 조계사에서는 신도회 소속 불자 10여명이 1차 총궐기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피신 중인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강제로 끌어내는 과정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신도들 입장에서는 적법한 공권력의 집행을 거부하는 한 위원장을 체포해 넘겨주는 게 정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킹의 입장에서 보자면 신도들의 행동은 법을 정의라고 믿는 맹목에 불과할 뿐이다.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실정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보다 높고 숭고한 가치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인도의 간디는 ‘희생 없는 종교’를 국가를 병들게 하는 7가지 악 중 하나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오는 5일 2차 민중총궐기대회 참가자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일방적 독백만 고집하는 정부의 차벽과 불통 앞에서 준법을 강조하는 것만이 종교의 길은 아닐 것이다.
<강진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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