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서말구와 10초34

이기환 논설위원 2015. 11. 3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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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에서 ‘서말구’란 이름과 ‘10초34’란 기록처럼 익숙한 단어도 드물지 싶다. 한데 썩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10초34’라는 숫자는 심하게 말하면 육상 발전의 발목을 부여잡는 ‘저주의 숫자’이자 반드시 깨야 할 ‘비원(悲願)의 기록’ 쯤으로 여겨졌다. 서 선수가 1979년 9월 멕시코 유니버시아드에서 세운 육상 100m 기록인 10초34가 무려 31년 간이나 깨지지 않았으니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이다. 한국기록 보유자는 따로 있었다. 1966년 당시 29살이었던 정기선 선수의 10초3이었다. 서말구 선수도 타이기록(10초3)만 갖고 있을 뿐 정기선의 기록을 끝내 깨지는 못했다. 궁즘증이 생긴다. 왜 서말구 선수의 유니버시아드 기록(10초34)이 0.04초 모자란데도 한국기록으로 공인됐을까.

세계육상계가 당시 도입한 전자계측 기록이라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육상계는 수동기록을 전자계시로 환산할 때 통상 0.20~0.24초 더한다. 서 선수의 유니버시아드 전자기록을 수동으로 바꾸면 10초10쯤 될 것이다. 서 선수에게는 무한한 영예였을 10초34 기록은 갈수록 한국 육상의 정체를 상징해주는 숫자가 됐다. 그럴만도 했다. 1939년 김유택이 조선-관서 학생대항전에서 10초5를 찍었다. 정기선의 1966년 수동기록으로 비교하면 0.2초 앞당기는데 27년이나 걸린 셈이다. 따지고보면 세계 육상의 발걸음도 가볍지 않았다. 제시 오웬스(미국)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록은 10초2였다. 아르민 하리(독일)가 1960년 10초F을 끊었으니 0.2초 단축에 24년이 걸린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10초 이내로 들어오면 기록단축은 더욱 힘들어진다. 짐 하인스(미국)는 1968년 고원에서 열린 멕시코 올림픽에서 9초95를 마크했다.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2009년에 찍은 기록이 9초58이었으니 41년 만에 0.37초 단축했을 뿐이다.

그보다 한국 육상의 발전속도가 워낙 더뎠기에 서말구 선수와, 그의 기록이 대접받지 못한 것이다. 기록을 세웠어도 금메달과는 거리가 멀었던 탓인지 육상스타 서말구를 조명하는 기사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1983년 프로야구 롯데의 선수(대주자) 겸 주루코치로 영입되고 나서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야구는 100m와 달랐다. 스타트 총성에 따라 뛰는 육상과 달리 야구는 상대 투수와 포수의 눈을 보고 뛰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야구선수들의 스타트가 더 빨랐다. 결국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말았다. 야구선수로서는 제몫을 하지 못했지만 육상 훈련 기법을 야구 선수의 몸에 알맞게 접목했다. 이를 통해 스피드를 키우고 부상을 줄이는 방법 등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다만 육상 분야에서 후학들을 지도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기는 하다.

어떻든 1979년 이후 서말구 선수의 영광이자 족쇄였던 ‘10초34 기록’의 부담은 이제 사라졌다. 2010년 이후 후배인 김국영이 3번이나 한국 기록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5년 만에 서 선수의 기록을 0.18초 앞당겼으니 괄목상대라 할 수 있다. 서말구 선수의 명복을 빈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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