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도인(道人) 시위
오는 6월4일, 서울 광화문 도심에서 도포 차림에 갓 쓰고 고무신을 신은 갱정유도(更定儒道) 도인 100여명이 모이는 이색적인 집회 장면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갱정유도는 유·불·선과 동·서학을 아우르며 종래의 유교를 갱신하고자 하는 민족종교. 지금도 일부 교도들이 전북 남원과 지리산 청학동 등에 은둔해 옛 복식을 고수하며 도를 닦는 생활을 한다.
현재 갱정유도를 대표하는 이가 한양원 도정이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종교행사에서 늘 흰 수염에 검은 갓을 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올해 나이 아흔 세살인데도 갱정유도 특유의 정신 수행과 영선도인법이라는 도인체조로 젊은이 못지않게 심신이 건강하다. 며칠 전 그를 만났더니, “올해 현충일을 앞두고 갱정유도 평화통일선언 50주년 기념대회를 열 것”이라고 했다.
1965년 현충일에 갱정유도 도인 500여명이 총본산인 남원에서 상경해 서울 시내에서 평화통일선언문이 담긴 유인물 30만장을 시민들에게 배포했다고 한다. 마침 국립묘지 참배를 마치고 돌아오던 박정희 대통령이 상투 틀고 갓 쓴 이들의 기이한 집회를 목격했단다. 박 대통령은 전단에 들어있는 ‘원미소용(遠美蘇慂)’을 문제 삼았다. 한문 띄어 읽기의 차이가 화근이었다. ‘원, 미소용’, 즉 ‘미국과 소련의 꾐을 멀리하자’는 뜻인데, 이를 ‘원미, 소용’으로 읽고 ‘미국을 멀리하고 소련의 종용을 받자’로 풀이한 것이다. 전단배포를 주도하다 청와대에 끌려간 한 도정은 결국 반공법 위반으로 92일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다.
당시 집회는 경향신문의 ‘갓 쓰고 데모’를 비롯해 ‘장안에 난데없는 청포(靑袍) 데모’ ‘기괴한 난동’ 등으로 일간지에 보도돼 화제가 됐다. 한 도정은 “외세의 힘으로 해방되는 바람에 죽고 죽이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인식에서 민족도의(民族道義)의 우리 힘으로 통일독립을 이루자고 주장한 것”이라고 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일·중·러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5000년 동안 전해진 우리 사상, 우리 힘으로 상극의 시대를 물리치고 상생의 대통합을 이루자는 갱정유도인들의 주장은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하다고 본다.
<김석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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