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인간의 악마성

이대근 논설위원 입력 2015. 5. 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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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은 1800년 호주에 딸린 섬 태즈메이니아에 이주했을 때 원주민을 원숭이보다 낫지만 인간으로는 진화하지 못한 동물로 간주했다. 아이는 잡아서 노예로, 여성은 성노예로 부리고, 남성은 바다표범처럼 사냥했다. 영국 왕립 태즈메이니아 연구회 소속 박사들은 마지막 남성이 죽자 기념품으로 그의 머리, 손, 발, 코, 귀를 잘라 각자 나눠 가졌다. 누구는 피부로 담배쌈지를 만들었다. 마지막 여성이 죽었을 때는 시체를 파헤쳐 뼈를 모아 1947년까지 박물관에 전시했다.

이게 먼 옛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2004년 미군의 아부그라이브 포로 학대사건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아니면 산 사람을 태워죽이고 목을 자르고 어린 소녀를 납치해 성노리개로 삼는 알카에다, IS, 보코하람의 활약상을 떠올려도 도움이 된다. 그건 좀 유별난 사람의 이야기라고?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최근 유엔 안보리 보고서에 따르면 알카에다, IS의 외국인 전사는 유엔회원국의 절반인 100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 수는 지난 9개월간 70% 증가해 현재 적어도 2만5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1971년 교도소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학생을 무작위로 선발해 간수와 죄수 역할을 부여했다. 그런데 간수 역의 학생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학적으로 변했고, 죄수 역의 학생은 제대로 항의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이 실험은 엿새 만에 중단됐다. 나중에 그는 놀라운 사실을 고백했다. 실험은 그의 의지로 중단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박사와 연구자가 실험 진행상황을 목격한 뒤 중단하라고 해서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짐바르도 교수 자신도 간수가 죄수를 학대할 때 죄수가 그럴 만한 존재로 느껴졌고 그들이 죄수 역할에 알맞은 사람이 아닌가 의심했다고 한다. 짐바르도 교수 역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실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 인간 본성을 둘러싼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겠지만 분명한 건 인간에게 선과 악 두 가지 모두 잠재해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악은 제도와 환경이 뒷받침되면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절대 인간에 대해 안심하면 안된다.

<이대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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