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아리랑의 전승

경향신문

"사람이 살며는 몇백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영화 <서편제>(1993년)에서 부녀로 출연한 김명곤과 오정해가 시골길에서 부르는 '진도아리랑'은 노래가 아니라 시대의 애절한 철학이었다.

지난 9월 김기덕 감독이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고 수상 소감 대신 부른 '아리랑'은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울려퍼졌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최고상을 받은 순간이었지만 말이 필요없었다. 수상의 기쁨도, 고생스러운 작업에 대한 만감도 '아리랑' 한 소절로 충분했다.

아리랑은 '이상한' 노래다. 부르는 이의 기분에 따라 슬프게도 기쁘게도 들린다. 빠르기도 '고무줄'이다. 시대와 장소, 상황과 상대에 따라 빠르게 혹은 느리게 부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경기아리랑' 1절을 부르는 데 30초면 충분하지만, 그 울림은 무한하다. 600여년 전 최초의 아리랑인 '정선아리랑' 이후 아리랑은 영혼으로 부르고 가슴으로 듣는 민족의 유산으로 전승되고 있다. 가락과 노랫말이 달라도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고, 부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부를 수도 있다. 우리말을 모르는 해외동포나 남북한이 함께 부르는 소통의 문화코드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노래가 아니라 정신이다. 음악이고 문학이며, 민속이고 역사다.

그동안 아리랑은 너무 흔한 노래여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엊그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계기로 아리랑 전승을 위한 활성화 방안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기·예능 문화재 지정은 해당 기·예능을 갖춘 보유자나 보유단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아리랑이나 김치·무예 등은 전승인과 전승단체가 많아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를 지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보유자나 보유단체 없이도 문화재 지정이 가능하도록 법개정이 되어야 한다. 문화재청이 내년에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니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또 등재가 이뤄지지 않은 북한의 아리랑도 연구·보존되어야 한다.

<유인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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