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한해 5만명 죽이는 담배 판매는 국가적 사기이자 코미디"
[인터뷰=허민 사회부장]
박재갑(63) 서울대 교수의 삶은 10년 주기로 바뀐다. 바뀌지 않는 것은 그의 삶이 언제나 국민건강과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박 교수가 1981년 서울대 의대 전임강사로 첫발을 내디딜 때 구상한 게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세포주(Cell line) 개발'이다. 한국인의 인체로부터 우리의 세포주를 만들어 연구에 쓰자는 건데, 10년 만에 이 꿈은 한국세포주은행 설립으로 현실이 됐다. 1991년부터는 유전성 암 연구에 착수했다. 이 일은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2000년에는 국립암센터 원장에 취임해 금연운동과 함께 담배 제조 매매 금지 캠페인을 벌였고, 다시 10년이 지난 지난해부터는 건강 지키기 범국민캠페인인 '운동화 신고 생활속에서 운동하기'를 벌이고 있다. "10년은 해야 뭐가 돼도 됩니다. 꾸준히 10년을 해가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고 도통한다는 겁니다. 하하하."
박 교수와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안에 있는 연구실을 찾은 지난 25일 오후에도 그는 바쁜 일상 속에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 관계자들이 '나트륨 줄이기 운동본부'(가칭) 발족 아이디어를 갖고 조언을 해 달라며 박 교수를 찾은 자리였다. 박 교수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직접 마우스로 컴퓨터 화면을 클릭하거나 전화를 걸고 후배를 불러 뭔가를 지시하며 어디론가 문자도 보내는 등 10여분이 흘렀을까, 식약청 관계자들에게 일을 맡길 만한 몇몇 사람을 소개시켜 주고는 면담을 끝냈다.
먼저 최근의 '담배 제조 및 매매 금지운동'에 대해 물었다.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조심하라고. 저는 머리 맞대고 함께 해결하자는 건데 협박도 받습니다. 흔적 없이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내가 지금 신고 있는 양말 금연 캠페인 양말입니다. 보세요, 금연이라고 써 있죠."
박 교수의 금연운동은 국립암센터를 맡으면서 시작됐다. "서울대 암연구소를 운영하면서도 담배가 얼마나 해로운지 구체적으로 몰랐는데, 국립암센터로 오니까 달라지더군요. 5000만명의 국민이 쳐다보는 자리 아닙니까. 국민들이 암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암에 걸린 이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암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게 훨씬 중요하죠. 암 발병 원인의 20%, 사망 원인의 30%가 담배에 있습니다. 그건 이미 증명된 거고 교과서에 다 나온 얘깁니다."
그에 따르면 정부가 담배의 제조 매매를 허용하는 것은 '국가 범죄'이자 '국가적 사기행각'이다. "그렇습니다. 담배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보니까 아! 담배를 만들어 파는 게 정말로 국가적 범죄행위고 사기로구나 하는 판단이 확실히 섰습니다. 그것도 희대의 범죄입니다. 지도자라고요? 웃기는 얘기입니다. 헌법에 나와 있어요. 대통령의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라고. 국민의 생명도 못 지키면서 무슨 지도자고 무슨 대통령입니까."
박 교수의 트위터에 들어가면 '우리는 코미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라는 글이 뜬다. '대마초를 피우면 담배보다 금단현상도 덜하고 독성도 덜하지만 파렴치범으로 몰린다. 대마초 피웠다고 잡아가는 검사는 담배를 피운다. 그건 코미디다. 식음료에서 발암물질 하나만 검출돼도 난리가 나고 식약청장의 목이 달아나지만 발암 성분이 62종이나 들어있는 담배는 공개적으로 팔고 있다. 이것도 코미디. 조폭이 먹고살기 위해 영역싸움하다 한 명이라도 다치면 당장 구속인데, 담배 때문에 한국에서만 한 해 5만여명이 죽어 나가는 데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다. 이것도 코미디.'
박 교수는 17대 국회 때인 2006년 2월 '담배 제조 및 매매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을 사회 각계각층 158명의 이름으로 입법 청원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다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국회에서 질질 끌다가 느닷없이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는 것을 먼저 증명하라'면서 황당한 요구를 하더군요. 그게 국회입니까 담배회사지." 이번 18대 국회 들어 2008년 11월 다시 입법 청원을 했다. 하지만 역시 단 한번도 의견 청취 한답시고 불려 간 일이 없단다.
"절차상으로나 예의상으로나 국회에 해볼 건 다 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시민의 힘이죠." 박 교수는 지난 18일 '한국담배제조및매매금지추진 운동본부' 총회를 열어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고 의사입니다. 보건의료 쪽에 책임이 많은 사람이에요. 담배 안 피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검증된 건강 지키기란 걸 알면서, 또 담배가 독극물이고 마약 같은 거라는 점을 알면서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입니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의 청와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일어난 일 하나.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 얘기를 하고 있더군요… 담배 얘기가 일절 안 나오는 거예요. 건보 재정이란 게 뭡니까. 국민 아플 때 쓰는 돈 아닙니까.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말했습니다. '이제는 국민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라. 담배가 매년 5만명 이상의 국민을 죽이는 독극물이니 이젠 끊어 달라' 이렇게요. 또 기획재정부에서 관장하는 담배사업법을 폐기하고 담배관리법을 제정해서 보건복지부가 관장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박 교수의 이 같은 열정은 국제사회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노력 덕분에 지난 2004년에는 '담배없는 세상연맹(ToFWA·Tobacco Free World Alliance)'이 결성됐고, 2005년엔 이와 관련한 '리옹 선언'을 이끌어냈다. 국제학회에도 관련 세션이 생겨났다.
―담배나 흡연자 관리에 대한 장기적인 구상이 있습니까.
"대한민국 흡연 인구를 현재 1000만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를 50만명 이하로 줄이려고 합니다. 그게 10~15년 걸립니다. 하지만 여전히 끊지 못하는 중독자는 등록을 하게 해서 일정 기간 진료와 치료를 병행시키고 의사 처방으로만 담배나 니코틴을 공급합니다. 국가범죄의 희생자에 대해 국가가 관리하는 거죠. 국가는 그 책임이 있습니다. 모르핀도 의사 처방에 의해 팔잖아요. 담배도 당분간 신고해서 의사 처방을 받은 사람에게만 팔 수 있도록 하고 궁극적으로 끊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국회 같은 데 맡겨 봤자 백년하청, 100년이 지나도 해낼 수 있는 위인이 없습니다."
박 교수는 운동본부를 통해 국내에서 학술활동과 범국민서명운동, 헌법소원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운동본부는 ToFWA의 한국지부 역할도 함께 수행한다. 박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내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분명히 나타날 겁니다. 헌재 재판관 출신 변호사 중에 뜻있는 사람들이 나와 합심해서 위헌 소송을 내는 겁니다."
박 교수의 반(反)담배 운동은 암 연구와 시술에 평생을 바친 필연적인 결과다. 박 교수는 특히 대장암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제가 서울대에 있기 때문에 그런 거죠 뭐. 제가 잘나서가 아니에요." 시술 실적을 묻자 또다시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한 7000례(例)쯤 되지만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적을 떠벌리면 환자 유치나 홍보에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명색이 서울대병원에서 그러면 안 돼요. 서울대라는 자체가 하나의 기득권인데, 자랑을 곁들여 환자 유치하고 당겨 오고 그런 것 좋지 않습니다. 그게 왜곡 현상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에는 환자를 거주지역 병원으로 많이 돌려보냈습니다. 그곳 아무개 잘하는데 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이러면서 돌려보내면 환자분들이나 그 지방의 병원과 의사들도 좋아합니다."
―지역이 골고루 발전해야 한다는 거군요.
"서울대에서 해야 할 일이 그겁니다. 그게 바로 리더의 역할이죠. 한때는 내원 환자의 40~50%를 돌려보낸 일도 있어요. 내가 독식(獨食)하면 환자분들이 몇 달씩 기다려야 하고 그런 문제도 있잖습니까."
대장암 권위자인 박 교수의 '똥 건강법' 강의는 유명하다. "삶은 똥을 닮았습니다. 입으로 들어간 건 반드시 똥으로 내놓아야 하듯이 삶 역시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어요. 똥을 보면 그 사람의 건강을 체크할 수 있어요. 옛말에 '똥이 굵어야 잘 산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에요. 건강한 사람의 똥은 바나나 모양이면서 굵고 황금색입니다. 몸이 안 좋으면 국수처럼 흐물흐물하게 떨어져요. 요즘 여성들, 다이어트를 너무 심하게 해서 빼빼 마른 똥을 눠요. 폭식 폭음하면 대장에서 수분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아 무른 똥을 누게 되죠…."
그 연장에서 박 교수가 요즘 벌이는 게 운동화 신고 출근하기 캠페인이다. "암, 뇌혈관질환, 심장혈관질환, 자살, 당뇨가 우리나라 5대 질병인데, 이 모든 걸 운동을 하면 많이 예방할 수 있어요. 암 전체의 10%, 뇌심혈관질환의 20~30%, 당뇨도 체중 줄이기를 병행하면 70%가 운동만으로 예방이 됩니다. 운동화를 신고 30분 이상, 약간 숨이 차거나 땀이 조금 날 정도로 운동을 하는 겁니다. 국민의 5대 질병을 예방하자, 그게 건보 재정 건전화죠."
박 교수와의 인터뷰 도중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큰일' 하나를 알게 됐다. 바로 한국세포주은행(Korean Cell Line Bank·KCLB)이다. 한국세포주은행은 생명과학자들에게 세포주를 공급하기 위해 지난 1991년에 설립된 비영리 생명과학기관이자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 인정한 공익재단법인이다. 박 교수는 한국인의 인체조직으로부터 수백종의 세포주를 개발했다. 현재 보유 중인 세포주가 무려 678개. 미국(3600개), 영국(1069개), 일본(743개)에 이어 세계 4위다. 인구 13억명의 중국(280개)은 물론 독일(607개)보다도 앞선 규모다.
박 교수가 이와 관련한 구상을 하고 뛰어든 게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1981년 서울대에서 막 전임강사를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세포주 실험을 하려고 보니까 실험에 필요한 세포가 타 대학 한 군데밖에 없어 가서 구경하는데 그것도 외국에서 수입한 거였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죠. 우리 고유의 세포주 개발과 함께 국제적으로 인증된 세포주를 수집하고 보존하고 공급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죠. 구상에 착수한 지 10년 만인 1991년에 재단을 설립했어요. 제가 세계적으로 자부심을 갖고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성과는 사실 이겁니다."
한국세포주은행이 보유한 세포주를 돈으로 환산하면 1000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이 은행이 생명과학산업에서 차지하는 가치는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기간산업에서 포스코와 한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합친 것 정도는 될 겁니다." 박 교수는 한국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이다. 이토록 중요한 성과가 그간 밖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건, 국민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일에는 적극 뛰어들어 알리되, 기초학문 및 연구와 관련된 과정과 성과물들은 조용히 연구자들 공동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는 평소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국립중앙의료원장 재직 때 노조와 갈등이 빚어져 중도 사퇴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막힘 없이 소신을 털어놓던 박 교수는 이 대목에서 좀 주저했다.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발령받았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노사관계였습니다. 고민 끝에 한국노동연구원 문을 두드렸죠. 연구도 자신 있고 진료도 자신 있었지만 당시 대형병원에서의 노동운동을 보면서 만약 암센터에서도 저런 식으로 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죠. 6개월간 '노사관계 고위지도자과정'이란 걸 다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다닌 코스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1기였는데, 그분도 나 때문에 담배를 끊었던 일이 있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과거엔 빨간 띠만 두르면 빨갱이로 봤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이 참 열심히 공부하더라고요. 그래서 서울대병원 측에도 '좀 배우라'고 했습니다. 전 노조를 사랑하려 애썼고 그들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사용자가 저쯤되면 노조 없어도 된다'는 얘기까지 할 정도였어요. 지금도 양대 노총의 지도부 인사들이 아프면 저한테 직접 전화하고 부탁도 합니다."
하지만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시절 '확성기'가 운명을 갈랐다. "전 확성기를 싫어했거든요. 병원이잖아요. 환자들 치료에 방해가 되거든요. 병실 옆에서 확성기 틀어놓고 노래하는 거 보고는 내가 더 있다가는…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물러날 때 모든 책임을 제가 진다고 했기 때문에 더 이상 변명은 안 하겠습니다."
―정말 안타깝네요. 노조에 섭섭한 마음도 있겠네요.
"아닙니다. 어쨌든 확성기 소리를 막지 못한 것도 제 잘못입니다. 대화 부족으로 확성기 소리가 나온 거니까요."
―현재의 노동운동에 대한 조언을 한 말씀….
"의사도 사회 지도층이고, 저는 충청북도 명예지사이기도 합니다. 제 스스로 대화 부족을 느끼고 모든 책임을 저에게 돌렸는데 이제 와서 뒷말을 하면 치사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내 탓'이라고 해주시기 바랍니다."
박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기자를 불러 세웠다. "거~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어요. 차기 대통령은 국방의대를 꼭 추진해 달라는 겁니다. 국군이 존재하는 한 국방의대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의대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군을 첨단화한다 뭐 한다 하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어요.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이 군 병원 시설을 보면 기겁을 할 겁니다. 나라를 지키다 다친 군인들은 최고의 의료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자격이 있어요."
군의 3차 의료기관은 대학병원이 아니고 수도병원이다. 정부는 돈 든다고 반대하고 의사단체들은 이권 빼앗길까봐 반대한다.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겁니다. 국방의대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박 교수는 "앞으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아프면 군 병원에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minsk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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