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 씀씀이로 나랏돈 빼먹은 외교통상부

박형숙 기자 2010. 9. 2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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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의 문제는 인사뿐만이 아니다. 2009년 외교부가 쓴 돈은 1조5000억원. 그중에는 횡령이나 '묻지 마 외교활동비'로 새나간 돈도 적지 않다. 감사 때마다 지적을 받지만 '특별회계'가 여전하다.

“곧 5천만 대이동이 시작되는 명절인데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걱정이 태산이다.” 9월 7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이윤성 한나라당 의원의 말이다. 이날은 당초 외교통상부(외교부) 결산 심사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여야 의원들의 질의는 유명환 외교부 장관 딸 특채 비리에 집중됐다. 이윤성 의원은 여당 소속이었지만 출석한 신각수 차관을 호되게 질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에서 모여든 가가호호 ‘추석상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으로서는 확실한 안주감을 제공한 외교부가 원망스러울밖에. 이튿날 신 차관은 비상 전직원 조회를 소집하고 “외교통상부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라며 환골탈태를 다짐하는 모습을 보였다.

ⓒ뉴시스 유명환 전 장관 딸 특채 비리로 창설 이후 초유의 위기 사태를 맞은 외교통상부가 9월8일 비상 전직원 조회(위)를 열어 환골탈태를 다짐했다.
견제 없는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외교부는 정권의 존폐와 무관하게 인사와 예산에서 예외를 인정받아왔고, 그 명분은 늘 업무의 특수성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관행은 특권·특혜로 이어졌고, 장관 딸 특채 비리를 낳았다. 결국 독자성을 인정받던 외교부의 인사권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부 행정안전부 이관이 검토되고 있다. 인사만이 아니다. 예산 문제도 횡령과 이·전용의 빈발, 사각지대에 있는 외교활동비 등 감사 때마다 지적되지만 좀체 시정되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감사원이 공개한 A4 200쪽짜리 〈외교통상부 본부 및 재외공관 운영실태 보고서〉와 국회 예산정책처 등이 분석한 ‘2009년 결산 보고서’를 토대로 외교부의 ‘황당 회계’ 백태를 정리해보았다.

줄줄이 새는 ‘자원 외교’ 예산

에너지외교 협력사업비 80억4200만원은 2009년 처음 책정된 예산이다. 이명박 정부가 에너지·자원 외교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우면서 일반 예산에서 분리됐다. 하지만 외교부가 당초 예산 편성 목적과는 다르게 재외 공관의 일상적 경비인 ‘업무추진비’로 사용한 사실이 국회 예산정책처의 결산 보고서에서 다수 지적됐다.

미국 뉴욕 공관에서는 ‘언론 및 여론 주도층 접촉 및 홍보’라는 명목으로 3만7230달러(약 4300만원)를 지출했고, 나이지리아 공관에서는 태권도대회와 축구대회 개최 비용으로 3728달러를 썼다. 에너지 외교와는 무관한 우리 정부 인사들의 공관 초청 만찬비용으로도 사용됐다. 독일 대사관은 독일을 방문한 통일부 정책실장과의 오찬비로 421달러, 몽골 대사관은 국방부 장관·국립중앙도서관장 만찬에 736달러를 자원외교비에서 썼다. 트리니다드토바고 공관장은 ‘골프비’로 2250달러를, 영국 공관에서는 친한 인사 초청만찬으로 2354달러, 러시아 공관은 국내 언론인 특파원단과의 ‘접촉’ 비용으로 1222달러를 집행했다. 관저 행사용 주류, 술잔 구입을 하는 데만도 우리 돈으로 1500만원 상당이 지출됐다. 한 외교 관계자는 “현지 네트워크는 외교 공무원이 여야 정권과 상관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한다”라며 정책 목표와 무관하게 지출되는 ‘접대 경비’의 배경을 설명했다.

아울러 세계 광물 자원의 30%를 보유하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의 대사관 수를 5개나 감축했는데, 이 역시 에너지 자원 외교를 표방한 정책 목표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신흥 개발국인 브라질(28개국)·러시아(33개국)·중국(42개국)·인도(20개국)와 우리의 아프리카 주재 공관(13개) 수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6자회담’ 남은 예산, 만찬·출장비로 슬쩍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실질적인 사업이 힘들어지자, 외교부 서울 본부는 집행하고 남은 돈을 7개 재외 공관에 송금했다. 당초 ‘6자회담 대북지원 의장국 강화사업’ 명목으로 2억원이 편성되었으나 43%인 8600만원만이 집행되고, 남은 돈 중에서 절반이 출장비와 업무추진비 등 통상적인 외교 활동 업무에 사용됐다. 외교부는 “재외공관에 북핵 문제를 위해 따로 책정된 예산이 없다”라는 이유로 지원금을 보냈다지만, 사업의 목적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뉴욕 총영사관의 경우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례만찬 비용으로, 미국·중국·일본 대사관 등은 출장비로 써버렸다.

‘나 홀로’ 공관, 횡령 비일비재

감사원이 이번에 외교부 본부와 미국 대사관 등 16개 재외공관을 상대로 벌인 감사에서는 연례적으로 반복되는 횡령 문제가 다수 적발되었다. 키르기스스탄 한국어교육원장은 2006년 2월부터 2010년 2월까지 한글학교 운영비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18만6000달러(약 2억1500만원)를 횡령해 현지 부동산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영국 한국교육원장은 이자 수입 7480파운드(약 1300만원)를 생활비 등 사적 용도로 사용해 적발됐다. 멕시코 대사관의 문화공보관은 운영비에서 남은 6470달러(약 7500만원)를 횡령해, 감사원이 외교부에 징계 해임을 통보했다.

ⓒ뉴시스 지난해 말 서울에서 열린 한·아프리카 포럼 장관급회의에서 유명환 장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측은 “다른 부처에서 파견된 주재원들이 주로 혼자 근무하는 문화원·교육원에서 ‘사고’를 쳤다”라며 억울해하지만, 재외공관의 부속시설에 대한 지도·감독권은 공관장에게 있기 때문에 책임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사실 대사관·영사관도 예외는 아니다. 외교부가 재외 근무수당을 책정하면서 기준을 잘못 적용해 수당을 과다하게 지급하고 있었고,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는 대사관·영사관 7개소에서 횡령 등 수억원대의 예산을 부당 집행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가짜 영수증 나오면 “관행이다” 변명

일명 ‘파티비’라 일컬어지는 외교활동비는 외교부 회계에서 사각지대다. 외교활동비는 현지인과 어울리면서 외교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관원들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정보활동비다. 외교부의 특수성을 인정해 부처 내규로 비공개가 인정되지만, 국정원이나 경찰청의 ‘특수활동비’처럼 법적 근거를 가진 비밀 사항은 아니다. 그런데도 국회 결산심사에서 그 내역을 낱낱이 공개하지 않는다. 외교부는 “타국과의 외교 관계상 공개할 수 없다”라며 두루뭉술한 총액만 공개하고 있는데, 감사에서 가짜 영수증이 발견되면 “영수증 사후 처리는 관행이다”라며 덮으려 한다. 이번 감사원 감사에서 미국 대사관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기본정보활동비로 지급된 40만 달러(약 4억6400만원) 중 영수증 첨부율이 10%에 그쳐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집행 결과 역시 2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본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내부 지침에 따르면, 공관원은 기본 정보활동비를 집행한 후 사후 정산 시 수령액의 50% 이상에 대해 영수증을 제출하고 집행 결과를 1년에 두 차례는 본부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회계감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

2009년 외교부가 쓴 돈은 모두 1조5000억원. 이는 그 전년도에 비해 17% 증가한 규모다. 공적개발원조(ODA) 예산, 다시 말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이나 국제기관에 제공하는 무상원조가 18%가량 증가했기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기여 외교’ ‘경제통상’ 중심 외교로 외교부의 위상은 날로 높아가고 있지만, 회계 처리는 “1960∼70년대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그 원인은 한마디로 감사 시스템의 총체적인 부실이다.

외교부 자체 감사관은 현재 10명, 재외공관은 총 156개소. 자체 감사관들이 통상 1년에 20개 재외공관에 대한 감사를 벌이는데, 그렇다면 7∼8년마다 한 번씩 감사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일반 외교관의 경우 2∼3년마다 한 번씩 본부·공관 순환 근무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과연 책임 있는 회계 처리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더욱이 외교부 감사관들의 경우 회계사 출신이 전무하다. 재외공관 회계 담당자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이 회계 실무 경험이 없는 신규 직원이 임명되고 현지 실정에 어두운 회계직 공무원은 현지에서 채용한 행정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어 보조 인력의 회계 비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외교부만의 ‘특수성’도 있다. 외교부의 예산은 원화 예산과 달러화 예산으로 구분되는데 달러가 절반을 차지한다. 편성 당시 환율과 집행 당시 환율의 차이로 인한 환차손·환차익이 외교부 회계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왔다. 환차손에 대해서는 추경이나 예비비를 통해 일부 보전을 받는데, 그 과정에서 이·전용의 발생이 불가피하다는 게 외교부의 항변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부 출신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100% 국고로 환차손을 보전해주는 법안을 제출한 상태.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도한 재정 부담을 염려해 환차손과 환차익을 융통성 있게 관리하는 ‘기금’ 설치를 제안한 상태다.

세간에서는 외교부 공무원에 대해 “민간인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다”라는 말이 돈다. ‘과도한 독립성’에 대한 일종의 힐난일 텐데,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은 “자율과 책임은 함께 가야 하는 것이고 그 중심추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감시와 견제를 늘릴 때다”라고 말했다.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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