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서명'없는 조서..'한일병합무효' 쟁점되나

2010. 8. 11. 07: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제법적 관점서 조약무효 근거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 한일강제병합이 국제법상 무효가 될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조약 문건이 공개되면서 `병합조약 무효' 논란이 다시 쟁점으로 부각할지 주목된다.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가 11일 연합뉴스를 통해 공개한 '일본측 한일병합 조서' 자료는 1910년 8월29일 일왕(천황)이 한일병합을 공포한 조서로 같은 해 8월22일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을 발효시키는 비준 문서에 해당한다.

한일병합조약 체결 당시 통감이자 일본 육군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와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은 병합조약 체결 이후 대한제국 측에서 현실적으로 비준할 국가 기구가 없다는 점에서 양국 황제의 공포 조서를 비준에 갈음하자는 각서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측 비준 문서인 일왕(천황) 공포 조서에 상응하는 것이 서울대 규장각 어학연구원이 소장한 순종황제의 조서(칙유)인데, 문제는 이 두 문서의 형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일왕 공포 조서에는 국새와 '睦仁(무쓰히토)'이라는 일왕의 이름 서명이 확인되지만, 순종황제의 칙유에는 국새 대신 어새가 날인돼 있고 '李拓'이라는 이름이 서명돼 있지 않다.

이처럼 조약의 우리 측 비준 문서 자체에 흠결이 있기 때문에 한일병합조약은 발효조차 하지 않았고, 따라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문건의 공개로 한일병합조약 무효 논란이 양국 간 외교적 현안으로 부상할지 여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100년전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한일 양국의 '인식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사실 병합조약 무효 논란은 한.일 양국간 해묵은 논쟁거리 중 하나다.

한국은 병합조약은 물론 한일의정서(1904), 을사늑약(1905), 한일협약(1907) 등 한일병합에 이르는 일련의 조약 자체가 강압적으로 체결된 불법조약이라는 점에서 원천무효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은 조약 자체는 합법적으로 체결됐으나 한국의 독립으로 무효가 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국의 입장 차는 1960년대 국교정상회를 위한 회담 시작부터 계속 평행선을 달렸고, 양국은 결국 서로 해석차의 여지가 있는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애매한 문구로 정리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2조에서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 때문에 병합조약이 무효라는 주장이 현실적인 힘을 갖게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도 10일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의 강제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기는 했지만 병합 과정의 강제성은 물론 병합 과정의 불법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 병합조약 자체가 합법적으로 체결된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 문건이 얼마나 신빙성 있고 압도적인 증거가 될지는 일단 역사학자 및 법학자 등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야 할 것"이라며 "여러 경험에 비춰보면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국제법적 관점에서 병합조약의 무효를 주장할 근거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지난 5월 각국의 수도에서 `1910년 체결된 한일병합 조약은 무효'란 내용의 성명을 동시에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 지식인은 성명서에서 "한국병합은 대한제국의 황제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한 제국주의 행위이며 불의부정(不義不正)한 행위다"라고 선언했으며, "조약의 전문(前文)도 거짓이고 본문도 거짓이다. 조약 체결의 절차와 형식에도 중대한 결점과 결함이 보이고 있다. 한국병합에 이른 과정이 불의부당하듯이 한일병합조약도 불의부당하다"고 명시했다.

한편, 이태진 명예교수가 공개한 이번 문건이 병합조약의 불법성이나 무효를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로서의 능력을 갖춘 것이 확인되고 한.일 양국이 동의한다면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한일병합조약의 불법성 여부나 효력을 문제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병합조약이 무효라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나오는 것은 정부로서도 환영할 일"이라며 "다만, 당사국 모두의 동의를 전제로 재판관할권이 성립하는 ICJ의 특성을 감안할 때 ICJ에 제소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hyunmin623@yna.co.kr

< 뉴스의 새 시대, 연합뉴스 Live ><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 포토 매거진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