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정" 현장 보고에 "새떼라고 하라".. 군 총체적 부실

김진우 기자 2010. 6. 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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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10일 발표한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군 대응실태 중간 감사결과는 전투예방·준비태세, 상황보고·전파, 위기대응조치 등에 있어 군과 국방부의 대응이 '부실투성이'였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북한 잠수함의 공격 가능성을 예상하고, 이상 동향을 파악하고도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 등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경계가 소홀했다고 지적됐다. 사고 직후 '늑장 보고'로 인해 초동 대응 과정에서 우왕좌왕했다는 점도 확인됐다. 심지어 경계 허술 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보고 누락과 왜곡 등 '군법'에 어긋나는 행위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해 경계·대비태세

잠수정 공격 예상 불구 대응조치 안해

북 잠수함 공격 가능성 예상하고도 대비 안해 = 군은 전투 예방 및 경계태세에서부터 무수한 허점을 노출했다. 감사원은 군이 잠수함을 이용한 공격 가능성을 예상했고, 사고 직전 북한 잠수정의 이상 동향을 파악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군은 지난해 11월 서해교전 이후 실시된 전술토의 등을 통해 북한이 기존 침투방식과는 달리 잠수함(정)을 이용, 서북해역에서 우리 함정을 은밀하게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예상하고도 이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한 것으로 확인됐다. 제2함대사령부는 백령도 근해에 잠수함 대응 능력이 부족한 천안함을 배치한 채 대잠능력 강화 등 적정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합동참모본부와 해군작전사령부는 제2함대사령부가 대잠능력 강화 조치를 이행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제2함대사령부 등은 천안함 사건 발생 수일 전부터 북 잠수정 관련 정보를 전달받고도 적정한 대응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감사결과 지적됐다. 연평해전 등 서해 NLL 인근에서 북한과 수차례 교전을 했는데도 대표적인 비대칭전력으로 꼽히는 북한 잠수함에 대한 대비태세가 소홀했던 것이다. 민·군 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침몰 원인이 외부의 공격에 의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서해 NLL의 경계태세가 무너진 데 그 근본 원인이 있는 셈이다.

▶늑장보고·책임회피누락·왜곡 빈번… 합참의장 음주설도

늑장·누락·왜곡 보고와 책임 회피=군은 천안함 사건 최초 상황보고부터 지연·누락 보고를 함으로써 초동 대응과정에서 혼선의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2함대사령부는 천안함으로부터 3월26일 오후 9시28분쯤 사건발생 보고를 받고서도 해군작전사령부에 3분 후, 합참에는 오후 9시45분에야 보고했다.

심지어 침몰 원인이 "어뢰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보고를 받고도 이런 사실을 합참 및 해군작전사령부 등 상급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또 사고 당일 밤 속초함이 추격·발표한 해상 표적물의 실체에 대해 속초함은 "북 신형 반잠수정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지만, 제2함대사령부는 상부에 "새떼"로 보고하도록 속초함에 지시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는 최초 상황보고를 중간부대에서 추정하거나 가감하는 것을 금지한 '보고지침' 위배다. 감사원 관계자는 "제2함대사령부에서는 반잠수정으로 보고하면 일이 복잡해지니까 속초함에 새떼로 보고하라고 찍어누른 셈"이라며 "보고를 바꾼 이유가 정당하지 않다고 보고 이번에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밝혔다.

군 최고수뇌부에 대한 늑장보고도 지적됐다. 합참 지휘통제실은 작전 최고지휘관인 이상의 합참의장에게 사고 후 49분 만에,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게는 52분 만에 각각 첫 보고를 하는 등 지휘보고체계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또 긴급 상황을 전파해야 하는 유관기관 중 상당수 기관에 상황을 전파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왜곡 보고도 서슴지 않았다. 합참은 해군작전사령부로부터 사건발생 추정시각이 오후 9시15분이라고 보고받고, 폭발음 청취 등 외부공격에 의한 사고 가능성 등을 보고받고도 사건발생 시각을 오후 9시45분으로 임의로 수정하고 '폭발음 청취' 등을 삭제한 채 국방부 장관 등에게 보고하고 발표했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경계 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우려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 박시종 행정안전감사국장은 "군이 사고발생 시각을 임의로 수정한 것은 초동 대처 지연에 따른 비난을 의식해서, 또는 적 도발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우왕좌왕한 탓에 늑장 보고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의혹이 제기됐던 이상의 합참의장의 음주설 등에 대해서는 "이번 징계 이유에는 지휘 책임과 함께 개인 책임이 다 포함된 것"이라면서 "개인책임은 밝히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합참의장은 비화기를 통해 무선상 연결이 항상 돼야 하는데 사고 당일 음주 후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위기대응·언론발표'관리반' 소집 않고 TOD 영상은 짜깁기

위기대응도, 언론발표도 우왕좌왕= 군은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따라야 하는 '매뉴얼'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방부는 천안함 사건과 같은 위기상황시 관계 규정에 따라 소집해야 하는 '위기관리반'을 소집하지 않았다. 심지어 '위기관리반'을 소집한 것처럼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는 등 최고수뇌부를 속이는 행위를 저질렀다. 비상상황시 의무적으로 조치해야 할 전투대응태세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또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열상관측장비(TOD) 동영상이 오후 9시23분부터 녹화돼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9시33분 이후의 영상만 편집·공개해 국민 불신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청와대 위기상황센터로부터 사건발생 시각 등을 알 수 있는 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 자료를 받고도 이를 사건발생 시각 확정에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 박 국장은 "군에서 발표한 발생시각 오후 9시30분을 유지하기 위해 동영상을 편집·공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군의 군사기밀 유출에 대해서도 문제삼았다. 군사기밀인 합참의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 자료가 외부에 유출돼 사건발생 시각 관련 혼란 등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또 보도자료를 배포할 때 보안성 검토를 실시하지 않거나 소홀히 해서 주요 무기의 배치 현황 등 군사기밀 자료 다수가 외부에 유출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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