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병역면제는 고위층의 의무?

2010. 10. 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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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有錢) 면제, 무전(無錢) 복무' '고위층 기피, 서민층 현역'. 대한민국의 병역 의무율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들 간에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고위층=병역면제'라는 인식이었다면, 최근에는 '병역면제 = 고위층'이라 할 정도로 병역면제는 고위층의 필요충분조건처럼 자리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청와대 안보 벙커에 군필자가 없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고위층의 병역면제에 대한 단면을 드러낸다. 현 정부 내각의 군 면제 비율은 24.1%로 일반 국민의 10배 수준이며,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난타를 당한 김황식 총리도 매한가지다. 그러나 '빽' 없이 입대한 현역들에겐 매운 군생활이다. 최근 군복무 기간 단축에는 제동이 걸렸고, 예비군 훈련은 '빡세졌다'. 이른바 '병역 양극화'라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서울 암사동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현모씨(47)는 최근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울화가 치민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김황식 총리 후보자 등 고위공직자들의 병역 기피 논란이 일 때마다 지난 겨울 입대한 큰애가 생각나서다. 아들은 대학 1학년 겨울방학에 맞추어 자원입대했다. 연년생인 여동생이 올해 대학에 입학할 것을 염두에 두고 '부모님 학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서둘러 입대한 것이다. 현씨는 "편지 보내줄 여자친구 하나 없이, 가진 것 없는 부모 탓에 제 발로 갔다"며 "어느 부모가 눈물 없이 자식을 군대에 보내겠느냐"고 말했다. 일반 서민들은 이렇게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 여기며 입대하는 데 비해 '가진 사람들'은 무슨 방법을 통해서라도 군대를 기피하는 데 화가 치민다는 현씨다.

잇따른 병역면제자 발탁, 당·정·청 모두 면제자

인천에 사는 주부 홍모씨(50)의 분노는 더하다. 아들 둘을 나란히 군에 보낸 홍씨는 MC몽, 김황식 총리 후보자 등 최근 잇따라 나오는 병역면제·기피 보도를 보면서 "힘 없고 빽 없는 사람만 군대에 가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여름 휴가 나온 아들의 까맣게 탄 얼굴을 보며 눈물지었다는 홍씨는 "둘째아들은 일부러 고된 군생활을 하겠다며 해병대에 자원했다"며 "최근 고위관료들의 병역기피 의혹을 보면 과연 저 자리에 앉을 만한 인물들인지 의심이 간다"고 꼬집었다.

사회 고위층의 군복무 문제가 또다시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단초는 김황식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였다.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김 총리 후보자의 병역면제를 둘러싸고 집중공세를 폈다. 김 총리 후보자는 1968년부터 신체검사 연기, 혹은 무종 판정(재신검 판정)으로 4차례 병역을 미뤘고, 1972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그 해 받은 신검에서 '부동시'(두 눈의 시력이 차이가 나는 것)로 면제를 받았다. 병역면제를 받을 당시 심한 부동시였다가 2년 후 공무원 임용 신체검사 때에는 시력이 좋아졌다고 해 병역면제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청문회에서 자유선진당 임영호 의원은 "현재 현역 복무 비율은 89.8%, 면제는 2.4%에 불과하다"며 "그런데 현 정부 내각의 군 면제 비율은 24.1%로 일반 국민의 10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가 소위 병역면제 정권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김유정 의원은 더 나아가 "후보자가 총리가 된다면 이명박 대통령,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까지 당·정·청의 수뇌부가 모두 병역면제자인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며 "한 마디로 '병역면제 삼총사'가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실 고위공직자의 병역면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장관 임명자 중 병역면제자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 문제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병역면제'는 '위장전입'과 함께 '그럴 수도 있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특히 한승수 총리(장남이 병역특례 중 해외출장 과다 논란), 정운찬 총리, 김황식 총리로 이어지는 국무총리 병역면제 시리즈는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상당히 동떨어진 인사라는 지적이다. 이들 외에도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건장했지만 군에 가지 않았다. 그를 두고 같은 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10년 동안 도망 다니다 군복무를 면제 받았다"고 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턱 관절염으로 군대를 가지 않았다. 1974년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 때는 정상이었지만 2년 후 군 신검 땐 정상이 아니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 등은 질병 또는 시력 때문에 병역이 면제됐다. 이 대통령 역시 군미필자다. 군대 갈 나이에 기관지확장증을 앓았다. 현대건설에 입사할 때는 괜찮았고, 지금은 완치됐다.

특히 지난 4월 천안함 사건이 벌어진 직후 청와대 벙커에서 열린 긴급안보관계장관 회의 참석자 중 대통령을 포함해 국무총리, 국정원장 등 수뇌부가 군대 경험이 없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민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당·정·청의 주요 인사가 군대를 안 갔다 왔기 때문에 분단국가에서 국민정서나 현실적으로 볼 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들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물림되는 고위층 병역 면제

더 큰 문제는 병역면제가 고위층 안에서 본인뿐만 아니라 자식 세대에도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초기 내각의 경우 장관 자녀들에 대한 병역면제율은 국민 평균면제율보다 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초대 내각 장관급 이상 22명의 2세들 병역 이행 실태를 보면, 병역 이행 대상자 24명 중 15명이 병역 의무를 이행했거나 복무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9명 가운데 3명은 과체중과 질병 등의 사유로 면제(12.5%) 받았고, 1명은 미국 국적자, 5명은 유학 등을 사유로 징병검사나 입영 연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고위 공직자 중 상당수가 자신의 근무기관에 자녀를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시키고 있는 것도 문제다. 최근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지자체 고위 공직자 중 자녀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82명을 살펴보니 19명이 아버지와 동일한 기관에서 복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공공행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상피제 전통에 어긋나는 것으로, 권력의 전횡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라며 "중앙 행정부서나 법원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 이같은 반상피제는 더욱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물림에는 국회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병무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제18대 국회의원 및 직계비속들에게서도 외국 영주권을 얻거나 이민을 가면서 병역을 피하는 구습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한 의원의 아들 형제의 경우 형은 외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2003년에야 병적(입영대상자에 오름)에 들어와 2007년에 고령을 이유로 병역이 면제되는가 하면, 동생은 '이민'을 사유로 병역검사를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의원의 아들도 1993년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지만 2002년 외국 영주권을 얻었다는 이유로 병역을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참모총장 출신 모 의원의 경우 손자 2명 모두 외국 영주권을 지니고 있어 병역이 면제되거나 징병검사를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의 아들'(자신)에 이어 '신의 손자'(아들)로 이어지는 병역면제의 대물림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2세들의 병역면제는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06년 겨울 방송된 KBS 1TV <시사기획 쌈>의 '파워엘리트, 그들의 병역을 말하다'는 재벌가의 높은 병역면제율을 폭로해 시청자들의 분노를 부르기도 했다. 방송에 따르면 우리나라 재벌가와 언론사 일가의 병역면제율은 33%로 당시 일반인 병역면제율 6.4%의 5배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기획 쌈>이 추적한 삼성, 현대 등 7대 재벌가의 병역의무 대상자는 모두 175명. 병역이행 여부가 확인된 147명 중 48명은 병역이 면제됐다. 이들 중 일부는 해외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해 군대에 가지 않았으며, 병역의무 나이를 넘긴 후 국내에서 경영자로 재직 중이다. 그룹별로 보면 삼성 관련 그룹들의 병역면제율이 단연 1위를 차지했다. 대상자 11명 가운데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사장을 비롯해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CJ 이재현 회장 등 8명이 면제를 받아 73%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이 SK그룹(57%), 한진그룹(50%), 롯데(38%), 현대(28%), GS(25%), LG그룹(24%) 순이다. 병역면제 사유도 다양해 허리디스크, 체중과다, 갑상선기능항진증, 근시, 장기유학 등으로 나타났다.

고위층 빈자리 현역만 '뺑이' 친다

최근 병역면제 또는 병역기피의 주된 사유는 국외 체류에 의한 고령화다.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이 최근 5년간 병무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해 평균 2만7500명이 병역면제를 받았고, 그 사유는 고령과 질병, 장기대기, 수형(受刑) 등의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령 면제자의 85% 이상이 국외 거주로 인한 연령 초과자인 것으로 파악돼 국외 체류가 병역면제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의원은 "실제로 해외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해외 체류를 병역면제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라며 "실제로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다는 이유로 병역의무를 면제받은 이가 30대 후반 대기업 등에 취업해 국내에서 억대 연봉자로 생활하는 경우가 빈번한 만큼 추가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병역문제는 사회적 형평성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항상 민감한 사회적 이슈가 됐다. 빈부와 직업귀천에 관계없이 대한민국 젊은이라면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누구나 이행해야 하는 '국민의 의무'이고 '사회적 연대'를 위한 기본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군대에 안 가는 것은 특혜고 특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특례와 특혜, 질병을 교묘히 악용한 고위층의 병역비리가 쏟아져 나올 때마다 평범한 이들은 분노와 박탈감을 느껴야 한다.

고위층의 병역면제 확산과 달리 최근 군에 입대하는 현역과 현역 출신 예비역들은 '빡 센' 군생활에 노출되고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군과 정부가 국가안보 상황이 열악해졌다며 강공책에 나섰기 때문이다. 우선 국방부는 병사 복무기간을 2014년까지 18개월(육군 기준)까지 단축하는 정책을 수정해 21개월로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방안에 따르면 육군 복무기간은 21개월, 해군과 공군은 각각 23개월과 24개월이 된다. 2007년 9월 노무현 정부 하에서 발표한 안을 2년이 갓 지나자마자 뒤집은 것이다.

이와 함께 현행 5주인 육군의 신병교육이 내년부터 8주로 확대돼 전면 시행된다. 육군훈련소 또는 각 사단 신병교육대(신교대)에 입소하는 훈련병이 5주간 기본교육을 받고, 자신이 배치될 사단의 신교대에서 추가로 3주 교육을 받는 체계이다. 3주 추가교육은 사격과 체력단련, 병사 개개인의 총검술인 각개전투, 주특기 등 전투원에게 필요한 핵심과목 위주로 진행된다.

뿐만 아니다. 군을 제대한 예비역들도 먼지 마실 날이 늘었다. 정부와 국방부는 최근 예비군 훈련에 대해 훈련유형을 단순화하면서 예비전력 정예화를 위해 훈련시간 확대를 추진키로 했다. 동원훈련 입소기간은 현재 2박3일에서 2016년부터 3박4일로, 2020년부터는 4박5일로 늘어나고 5~6년차 예비군의 향방훈련 시간도 18~20시간에서 36시간으로 확대된다. 전시에 전방 주요 부대에 동원되는 예비군을 '핵심동원예비군'으로 선정해 집중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국방부는 또 제대하고 복학한 대학생의 예비군 훈련 시간을 현행 8시간에서 다른 예비군처럼 2박3일로 늘리는 방안도 형평성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비군 제도를 전반적으로 고치는 것은 군복무 기간이 단축되고 군에 입대할 젊은이가 줄어들어 상비군의 전력 약화를 보완하기 위해 예비군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라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공정사회는 공정한 법적용에서 시작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근로의 의무, 교육의 의무 등을 규정해 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국방의 의무를 국민의 신성한 의무라고 한다. 그러나 병역 대상자 대다수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군에 가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징집' 영장을 받아들고 가족과 헤어지기 싫어 눈물을 보이며 훈련소에 입소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병역문제에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정성'이 더욱 엄격히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병역문제는 현실적으로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고위층'이 되지 못한 평범한 서민들의 분노는 최근 가수 MC몽에게 쏠렸다. MC몽은 군 입대를 가지 않기 위해 생니 3개를 뽑은 것으로 드러나며 병역비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상태. 그러나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녀와야 하는 군대. 더군다나 공인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더욱 더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MC몽만이 군 면제를 받기 위해서 비리를 가지고 있는가? 소위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론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는 의견도 팽배하다. 일각에서 MC몽은 최근 방송에서 퇴출되는 등 병역문제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데, 총리 후보자에게만 병역문제가 관대하게 적용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소설가 김이경씨는 이에 대해 "부동산투기, 직권남용, 위장전입, 특혜취업 등 온갖 위법행위가 드러났음에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 고위 공직자들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연예인들만 문제 삼는 것은 혹 약한 자에게 더 가혹한 심리는 아닌가"라며 "우리가 분노해야 할 것은 연예인 개인의 치부가 아니라 이 사회의 잘못된 소득구조이며, 돈과 권력을 동원해 병역을 기피하는 불공정한 관행이며, 실력보다 학력을 대우하는 왜곡된 시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가수 MC몽과 총리 김황식, 가수 유승준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같은 의혹 선상에 있는 만큼 법 적용도 동일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다. 군역 미필에 대한 의혹은 같으면서도 결과는 판이한 것이 과연 공정한 사회인가 하는 지적 때문이다. 최근의 화두인 '공정사회'의 잣대는 시대나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법 적용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목소리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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