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기 잡은 한명숙..검찰 반전카드 있나

정재호 입력 2010. 3. 13. 06:01 수정 2010. 3.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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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정재호 기자 =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혐의 재판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연이어 검찰 수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해 향후 검찰의 대응에 관심이 모아진다.

검찰은 곽 전 사장 발언에 대해 표면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상당한 고민에 빠진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곽영욱 법정진술 일파만파검찰이 수세에 몰린 것은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형두) 심리로 진행된 2차 공판부터였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직접 건냈다고 진술했던 곽 전 사장이 돌연 "5만 달러를 직접 준 것이 아니라 의자에 두고 나왔고, 한 총리가 봤는지, 챙겼는지는 모른다"고 답한 것이다.

수사부터 공소유지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권오성)는 곽 전 사장 진술 이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곽 전 사장은 이후 공판과정에서도 계속 검찰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왜 총리공관에서 주려고 했느냐"는 질문에는 "(평소) 총리를 만날 수가 없어서"라고 답변,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이 두터운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검찰의 주장과 배치되는 발언을 이어갔다.

"돈봉투를 양복 윗도리에 넣고 총리공관을 방문했다"는 곽 전 사장의 진술을 입증하려 했던 검찰의 노력도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검찰은 5만달러를 넣은 양복 윗도리를 준비했지만, 곽 전 사장이 이날 휠체어를 타고 링거를 주사한 채 법정에 출석한 탓에 그 옷을 입혀보지도 못했다.

◇강압수사 의혹 제기특히 곽 전 사장은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로 너무 힘들었다"며 "조사받을 때 검사가 너무 무섭게 조사해 죽고 싶었다"고 밝혀 검찰을 재차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후에도 "12시까지 검찰청에서 조사받고, 새벽 1시까지 면담을 했다. 구치소로 돌아가면 새벽 3시가 될 때도 있었다. 심장병 수술 한 사람에게 너무 힘들었다"며 지속적으로 이 부분을 언급했다.

이에 검사는 "조사 받다가 아픈 날은 쉰 날도 있었다"고 반박했지만, 검사의 반발에도 곽 전 사장은 "그때는 검사가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다"고 맞받아 쳐 일순간 법정이 술렁이기도 했다.

승기를 잡은 한 전 총리 측은 "곽 전 사장이 오찬 당시 한 전 장관의 의상, 동석자들의 도착 순서, 당시 나눈 대화 등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유독 검찰 조서에는 한 전 총리가 정세균 당시 산자부 장관에게 자신을 잘 부탁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며 검찰 수사 자체에 이의를 제기했다.

한 전 총리 측의 이의제기와 곽 전 사장의 발언으로 당황한 검찰은 공소시효가 완성돼 공소장에 기재하지 않은 '골프채 선물 의혹' 카드를 뽑았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1000만원대 골프채 풀세트를 선물했다"며 그 증거로 골프용품 매장의 지출내역서와 대한통운 서울지사계좌에서 10만원짜리 수표 99장이 지급된 내역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같은 상황을 보고받은 검찰 수뇌부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돈봉투를 (의자에) 둔 것은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주요 공소사실이 번복되거나 부인된 상황은 아니다"는 입장을 내놨다.

◇'진술의존' 부실수사 논란그러나 검찰은 전날 열린 3차 공판에서 더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곽 전 사장이 "검찰 조사 때 의자에 돈봉투를 두고 나왔다고 말하지 않고 법정에서 말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정신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곽 전 사장의 진술이 수사의 단초가 됐다"고 공공연히 밝혔던 검찰로서는 '정신없는' 곽 전 사장의 진술에 올인한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또 곽 전 사장은 "검찰 조사 때 말한 것이 진실이냐, 법정에서 말한 것이 진실이냐"는 질문에 "법정에서 말한 것(이 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변호인은 "검찰이 공개한 곽 전 사장 진술조서에는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돈봉투를 직접 건넨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는 점을 강조, 검찰 수사를 다시 한번 근본부터 흔들었다.

공판 초기부터 검찰이 수세에 몰리자 법조계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검찰의 부실·강압 수사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모 법조계 원로는 "공판을 통해 검찰이 얼마나 부실하게 수사했는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며 "기소권을 남용한 것 뿐만 아니라 특정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지 강하게 의심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활동 중인 모 변호사도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강압수사를 진행한다는 말인가"라며 "곽 전 사장에 대한 강압적인 수사가 사실이라면, 이 사건 선고결과와 상관없이 검찰은 책임있는 해명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재경지검의 모 검찰 간부는 "기소 단계부터 이 사건에 대해 검사들의 의견이 분분했다"며 "노 전 대통령 서거 사건 이후 또다시 검찰이 국민적 불신을 받지 않을지 걱정이다"고 밝혔다.

◇검찰, 내놓을 '반전카드' 있나상황이 부정적으로 흘러가자 수사팀의 움직임도 바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 관계자는 "재판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검찰이 발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향후 공판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원론적인 언급만 남기고 구체적인 대답을 피했다.

이처럼 검찰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하며 다음 공판을 준비 중이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내놓을 카드가 예상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에 대한 부실·강압 수사'를 반박할 영상물 열람 허용 카드를 이미 사용했으며, 골프채 구입 관련 증거도 제출했다.

이외에 검찰이 반전을 노릴만한 카드로는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은 오찬 당시 구체적인 진술과 정황을 제시하는 것과 5만달러의 사용 흔적과 관련된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는 것 등일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출신의 모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전 국무총리를 상대로 기소한 사건"이라며 "이렇게 쉽게 재판이 끝나지 않을 것은 물론 향후 공판 과정이 지금까지와 또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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