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금강산 피격' 알면서 연설문 수정 안 한 이유는

2008. 7. 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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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명박 대통령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에도 불구하고 18대 국회 개원연설에서 예정대로 '남북대화 재개' 발언을 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 사건을 보고 받은 시각은 11일 오후 1시30분. 국회로 출발하기 20여분 전이다. 이 대통령은 오후 1시50분께 청와대를 출발해 오후 2시20분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서 개원연설을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지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며 "남북 당국의 전면적인 대화가 재개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대북정책의 최우선"이라며 새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구상을 강조했지만 취임 이후 처음으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이행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새 정부 대북정책의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방점을 찍어 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가장 중요한 남북정신은 1991년도에 체결한 기본합의서 정신"이라고 못 박았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정신을 새삼 언급한 이유는 그간 냉각 기류가 흘렀던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는 명분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실효성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실마리가 풀릴만한 상징적인 발언을 한 셈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0년 정권의 대북정책을 끌어안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18대 국회 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처리 및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회 개원연설과 피격 사건은 별개"라고 선을 그으며 이번 사건이 모처럼 새 정부가 내 놓은 남북관계 유화책에 찬물을 끼얹지 않길 바라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우리 국민이 사망한 점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남북관계의 큰 틀을 '즉흥적으로' 바꿀 수는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이 대통령이 국회 출발 시각이 임박한 때에야 피격 사건을 보고 받은 점도 의문점이다.

청와대 측은 "중간보고 과정에서 '질병 사망설' 등 혼선이 있어서 대통령 보고가 지연됐다"며 "정확하지 않은 보고를 할 수는 없었다"는 요지로 해명했지만 청와대가 사건을 인지한 지 2시간여 만에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분초를 다투는 촉박한 사안인데다 연설문에 대북 관련 언급이 있는데도 뒤늦게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은 청와대 보고 체계 및 위기관리 의식이 그만큼 허술하다는 방증이다.

확실하게 파악된 사안이 아니더라도 자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통일부가 최초로 이 사건을 인지한 직후 대통령에게 보고했어야 할 문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 연설문의 경우 갑작스런 사건사고가 아니더라도 내부 논의를 거쳐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연설 직전이나 연설 중에도 수정이 가능한데 이를 고치지 않은 점도 안이한 상황 인식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5월 5.18 민주화운동기념사 초고에 포함됐던 "최근 거짓과 왜곡에 휩쓸리는 경우가 있더라"는 대목은 실제 연설에서 누락됐었다.

당시 청와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인해 악화된 여론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최종 원고에서는 삭제된 부분인데 실무진의 '실수로' 초고가 언론에 배포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막판에 연설문을 수정하지 못하더라도 이 대통령이 현장에서 연설 내용을 일부 수정할 수도 있지 않았냐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쇠고기 파동' 과정에서 부쩍 말 수를 줄이기는 했지만 이 대통령이 평소 연설문에 충실한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유독 원본 그대로 연설문을 낭독한 개원연설이 도드라져 보인다는 평이다.

이 대통령은 본인이 납득하지 못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은 생방송 주이더라도 즉흥적으로 수정 또는 삭제한 채 발언하곤 해 취재진들을 바짝 긴장시켰었기 때문이다.

자국민이 외지에서 변을 당한 마당에 실제 연설에서 대북관계 발언을 살짝 수정하거나 희생자를 애도하는 표현을 적절히 섞는 기지를 발휘해야 마땅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동국대 북한학과 김용현 교수는 "청와대가 개원연설을 하기 전에 이 사실을 알고도 대화를 제안한 부분은 잘못됐다"며 "금강산 피격과 남북관계 개선이 별개의 사안인 만큼 사건 내용을 솔직하게 밝히는 정공법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전면적인 남북대화 재개를 제안한 것은 좋았지만, 돌발적이고 중대한 사안이 발생했으면 전후 사정을 감안해서 조금 더 신중하게 말했어야 한다"며 "'남북대화 재개와 금강산 사건은 별개'라는 (청와대의) 입장도 이 문제가 남북관계에 지장을 줄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밝혀진 연후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선주기자 sak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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