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세운 '광우병 원칙' 모두 무너트려

2008. 5. 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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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부, '안전성' 180도 말 뒤집기

30개월 넘은 소 '안된다'→'된다'로 태도 돌변

광우병 위험 인식하고도 타결뒤 안전성 홍보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5일 공개한 정부 내부 문건을 보면,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라는 정치적 고려를 위해 애초 세워놓았던 한-미 쇠고기협상 원칙을 완전히 무너뜨린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또 농림수산식품부가 졸속 협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꾼 사실도 잘 나타나 있다.

농식품부(당시 농림부)는 지난해 5월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받고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을 요구해 오자, 지난해 9월11일과 21일 두 차례 전문가 협의회를 열어 '개방 수위와 협상 시 대응논리' 등을 마련했다. 전문가 협의회에는 농림부 공무원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전문가, 외부 교수 등이 참여했다.

당시 정부는 전문가 협의 결과를 바탕으로, '30개월 미만'이라는 연령 제한을 고수하고 30개월 미만에서도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7가지는 모두 수입을 금지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정부는 그 근거로, '국제수역사무국도 30개월 이상 소에서 생산된 쇠고기에 대해서는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완전히 보장하지 못한다'고 지적했고, 특히 최근 연구결과에서 28개월짜리 소에서도 광우병 원인물질인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을 내세웠다. 미국의 광우병 통제체제가 완벽하지 않아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중요한 논거로 채택됐다. 일부 전문가는 뼈를 포함하는 쇠고기를 허용할 경우 24개월 미만으로 연령 제한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국제수역사무국은 30개월 미만의 소는 편도와 회장원위부(소장 끝부분) 등 2가지만 광우병 특정위험물질로 인정하고, 30개월 이상의 소는 뇌·척수·눈 등 7가지를 광우병 특정위험물질로 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광우병에 걸리기 쉬운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해, 국제수역사무국 기준과 관계없이 30개월 미만 쇠고기에 대해서도 광우병 특정위험물질 7가지는 모두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정했다. 특히 미국의 치아감별법에 의한 연령확인 시스템에 오류가 많다는 점과, 30개월 이상 소와 미만 소의 도축라인이 분리되지 않아 섞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광우병 특정위험물질 7가지 모두를 수입 금지해야 하는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달 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협상에서 30개월 미만의 경우 편도와 회장원위부를 제외한 나머지 5가지는 수입을 허용했다.

정부는 또 애초 내장 전체와 햄·소시지 등 가공식품도 수입금지 품목에 넣었고, 뼈를 고아 먹는 우리의 식습관을 고려해 사골·골반뼈·꼬리뼈 등 살코기를 제거한 상태의 뼈도 수입금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이들 품목은 결국 모두 수입 가능하도록 합의됐다. 정부는 아울러 미국이 광우병 징후가 뚜렷한 소만 검사하고, 일반 소에 대해선 예방검사(예찰) 시스템도 부실하다고 인정했다.

이처럼 정부는 미국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나름의 협상 원칙도 가지고 있었지만, 쇠고기협상 타결 뒤에는 국제수역사무국 기준만 들먹이며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 2일 발표한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문답 자료'에서는 '미국이 효과적으로 광우병 감염 소를 가려낼 수 있는 검사 체계를 운영하고 있고, 뼈를 고아 먹어도 뼈 자체에는 감염성이 없어 안전하고, 미국이 동물사료 금지 조처를 강화하지 않아도 광우병 통제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불과 몇 달 만에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안전성에 대한 정부의 논리와 주장이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증폭되는 배경이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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