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받아적기만 해 '묻지마 대통령'의 소통법

2013. 12. 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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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 청와대의 '자랑스러운 불통'

▶ 지난 19일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1년이 지났다. 1년을 평가하는 열쇳말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되고, 줄곧 청와대를 짓눌렀던 것은 바로 '불통'이라는 낙인이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당선 1주년을 자평하며 "가장 억울한 게 '불통'이라는 비판"이라고 항변했을 정도다. 청와대는 지금껏 국민과 어떻게 소통했기에 이렇게 서로 다른 평가가 나올까. 지난 1년 청와대가 보여준 이른바 '박근혜식 소통법'을 살펴본다.

"띵동!"

18일 오후 3시. 청와대 춘추관에 벨소리가 울린다. 춘추관에서 이 소리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도착했다는 걸 알리는 신호다. 기자들은 반사적으로 노트북을 챙겨 춘추관 현관에 마련된 브리핑장에 자리를 잡거나, 각자 자리에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말을 받아 칠 준비를 한다. (일부 기자들은 "이젠 식당에서 주문을 위해 울리는 '띵동' 벨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약 5분 정도 현안에 대한 설명과 문답을 한 뒤 이 수석은 마이크를 끄고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좀 하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후 그는 격정적인 목소리로 무려 45분 동안이나 지난 1년의 성과 및 '불통', '나홀로'라는 외부 비판에 대한 반박을 쉴새없이 쏟아냈다. 이를 타이핑한 분량만 원고지 70장에 달했다. 일부 기자들 사이에선 "브리핑이 몰아치듯 지나치게 일방적"이라는 불만이 나왔고, 또 어떤 기자들은 중간에 듣다 포기하고 자리를 뜨기도 했다. 하지만 브리핑 내용은 이 수석의 바람대로 "원칙을 지키는 불통은 자랑스러운 불통" 등의 제목으로 일제히 보도됐다. 이 수석의 웅변투 브리핑…, 춘추관에선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박근혜의 입'은 이정현 홍보수석 하나

지난 1년 국민들과 공식적인 '소통'을 담당하는 청와대의 홍보 업무는 '이정현 수석 이전과 이정현 수석 이후'로 딱 잘라 나눌 수 있다. 결정적인 계기는 그 유명한 '윤창중 대변인 미국 현지 성추행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윤창중 대변인이 파면됐고, 이남기 홍보수석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이정현 수석 체제가 자리잡았다.

청와대 기자들 사이에선 정부 출범 직후 이남기 홍보수석과 윤창중-김행 대변인의 시스템이 가동됐던 초반 몇 달을 '최악의 시기'로 꼽는다. 당시 이남기 수석은 언론과 거의 접촉을 하지 않았고, 인수위 대변인 시절부터 '밀봉 선생'으로 통했던 윤창중 수석 대변인은 청와대의 공식적인 발표 이외엔 어떤 '배경 설명'이나 정보도 내놓지 않아 기자들의 원성을 샀다. "차라리 벽에 대고 취재를 하는 게 낫겠다"는 탄식이 나올 때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이후기자회견 한 번도 열지 않아국민들에게 전할 메시지는회의 모두발언으로 알리지만이에 대한 질문은 받지 않는다"대통령의 원칙이 신뢰감을주는 게 진정한 소통"이라고이정현 홍보수석은 말하지만다양한 의견 수렴해 반응하고갈등 조정하지 않는 건 문제

6월 초 이정현 수석이 취임한 뒤엔 상황이 한결 나아지긴 했다. 이 수석은 현재까지도 아침 7시~7시30분 춘추관을 찾아 그날 일정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이후 오후 5시께 다시 한 번 춘추관을 찾는다. 현안이 있을 때는 하루에 3~4번 춘추관에 오는 경우도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청와대 업무의 특성상 대부분의 내용은 기사를 쓰지 않는 조건으로 설명하는 '백 브리핑'이지만, 때론 "내 이름으로 (기사가) 나가도 된다"며 강한 톤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야당 의원들의 '귀태' 발언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철' 발언 등에 대한 이 수석의 강도 높은 비판은 대부분 이런 자리에서 이뤄졌다. 물론 한참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해놓고 "이건 쓰지 말아달라"며 김을 빼놓는 일도 심심찮게 있다.

하지만 이정현 체제 이후 청와대의 '소통'은 지나치게 1인 중심으로 흘러가는 문제를 낳았다. '박근혜의 입',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 수석의 말이 대체로 대통령 의중과 청와대의 기류를 정확히 반영하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그를 통해서만 대부분의 정보가 전달되면서 의사소통 통로의 협소함이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 더구나 이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너무나 강한 사람'이다. 이는 기자들이나 여권 인사들의 일치되는 평가다. 토론이나 쌍방향 소통이 이뤄지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구조다.

소통 통로의 협소함은 지난 8월 초 청와대 비서진 개편으로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좀더 심해졌다. 김 실장은 '비서는 나서지 않아야 하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사람이다. 자연스럽게 청와대 비서실의 비공식적 언론 접촉은 전보다 더 줄었다. 인사검증과 사정 업무를 맡고 있어 언론의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민정수석실의 경우, 김 실장 체제가 들어선 뒤 언론의 접촉 자체가 어려워졌다.

이런 탓에 기자들 사이에선 '비밀 유지와 보안만큼은 헌정 이후 최고 수준'이라는 씁쓸한 자조가 자리잡은 지 오래됐다. 정부 초반 심심치 않게 나왔던 인선 특종기사도 사라졌고, 특정 정책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떠보려는 이른바 '애드벌룬 기사'도 찾아보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결정되지 않은 인사나 내부 논의를 밖으로 떠들고 다니는 걸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 대통령은 당시 비대위원 인선 내용이 유출된 것을 두고 "촉새가 나불거려 가지고…"라는 유명한 발언으로 새누리당 참모들을 얼어붙게 했다.) 더구나 인선의 경우엔 박 대통령이 최종 '낙점'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정확하게 내용을 알 수도 없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선 "언론에 미리 이름이 거론되면, 될 사람도 안 된다"는 말이 정설로 자리잡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첫 1년간 15번 기자회견

청와대라는 조직이 아닌, '대통령 박근혜'의 소통방식에 좀더 초점을 맞춰본다면, 지난 1년 박 대통령의 '불통' 근거로 가장 많이 언급된 게 바로 '실종된 기자회견'이다. 박 대통령은 당선 뒤 인수위 시절에도, 그리고 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금껏 단 한 차례의 기자회견을 열지 않았다.

정부 출범 직후인 3월4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지연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읽기 위해 춘추관을 방문해 카메라 앞에 선 게 유일하다. 이마저도 문답 없이 담화문을 읽은 게 전부였다. 기자회견뿐 아니라 언론 인터뷰도 없었다. 해외 순방에 앞서 상대국 유력 언론들과 미리 인터뷰를 한 적은 있다. 순방에 동행한 국내 언론은 현지에서 보도된 외신의 내용을 보고 대통령의 말과 생각을 다시 국내에 보도하는 일을 되풀이했다.

전임 대통령 시절과 비교해보면, 박 대통령의 이런 소통 스타일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1년 동안 15번의 기자회견 또는 '국민과의 대화'를 했다. 국민과 직접 소통을 더 선호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1년 동안 18번의 기자회견 또는 '국민과의 대화'를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한때 케이블 텔레비전을 활용해 대변인의 청와대 브리핑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큰 성과를 냈다고 보긴 어렵지만, 정기적으로 생중계되는 미국 백악관 브리핑이나 일본 총리관저의 문답회견을 참고로 한 시도였다.

(참고로 기자회견 좋아하기로 유명했던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재임 중 무려 1023회의 기자회견을 했다고 한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4년 동안 43회, 아버지 부시가 84회, 기자회견을 가장 꺼렸던 아들 부시 대통령도 16회의 단독 기자회견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최근 기자회견을 한 것은 지난 11월14일이고, 일본의 아베 총리는 12월9일 기자회견을 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때 어떤 방법을 활용할까. 대통령이 매주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와 격주로 주재하는 국무회의가 바로 그런 메시지 전달 통로다. 청와대는 이 회의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박 대통령의 '모두(첫머리) 발언' 부분만을 기자단을 대표해 회의장에 들어가는 1~2명의 기자에게 공개한다. 짧게는 2~3분에서 길게는 10분 이상 이어지는 이 발언을 받아 적고, 다시 모든 기자들에게 전파하는 구조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 북한의 도발 위협이나 개성공단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 기초연금 공약 수정에 대한 입장 표명 등 대통령의 굵직하고 주요한 현안 발언은 모두 이 회의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됐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매우 중요한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과 판단을 들을 수는 있어도 그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질 수는 없는 일방통행식이라는 점이다.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다시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기자회견 방식이 대통령의 중요한 소통 행위 중 하나로 꼽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토론·이견 없는 의사결정 구조의 산물

박 대통령이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서는 우선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문답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가설이 있다. 실제 박 대통령은 대선 때 실시간 중계 때 빚어진 몇 가지 해프닝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텔레비전 토론회 때 '지하경제 양성화'를 '지하경제 활성화'로 잘못 말해 누리꾼들의 입길에 올랐고, 정수장학회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다가 법원의 판결문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설명해 유족들이 반발한 적도 있다. "본래 전하려던 취지는 오간 데 없고 지엽적인 내용이 꼬투리 잡혀 집중포화를 당한 경험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것"(새누리당 관계자)이라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의 설명은 다르다. 박 대통령을 오래 봐왔던 한 참모의 말이다. "대통령이 언론에 자주 나서는 게 일종의 인기나 이미지 관리 차원이라고 여겨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다. 업무와 관련된 대화나 메시지 전달은 각종 회의나 현장 방문 때 충분히 하고 있다." 여야 대립이 심한 한국적 정치 풍토가 영향을 줬을 거란 설명도 뒤따랐다. 그는 "대통령이 언론에 자주 나와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하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 또 야당은 대통령 발언을 무조건 공격하는 게 우리 정치 풍토다. (대통령이 자주 나서는 것 자체가) 통합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 박 대통령이 언론과의 대화나 문답에 대단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에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을, 5월엔 정치부장단, 7월엔 논설실장단을 차례로 청와대에 초청해 오찬·만찬을 함께 하며 대화를 했다. 질문을 미리 조율하지도 않았고, 자유롭게 오간 대화의 모든 내용이 녹취돼 가감 없이 기자들에게 전달됐다. '실시간 회견'만 아니었지, 사실상 기자회견을 3번이나 한 게 아니냐는 게 청와대의 항변이다.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새해 연두 기자회견 또는 내년 2월 취임 1주년 기자회견까지 건너뛰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 사람밖에 없는 대통령이 4800만 국민 전부 불러다 대접하는 게 소통이 아니다. 대통령의 원칙이 신뢰감을 주는 게 진정한 소통이다. 여름에 전기가 나가는 일이 있어도 원전 비리를 뿌리뽑으면 국민이 박수친다. 역대 정부 못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 돈 환수했고, 국민들 박수쳤다. 그게 소통 아닌가?"

이정현 수석의 말이다. 어쩌면 이 말이 박근혜 대통령을 짓누르는 '불통' 논란에 대한 해결책을 담고 있을 수 있다. 대언론 관계는 소통의 일부일 뿐이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와의 관계도 소통이고, 인사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누굴 향하는지 보여주는 것도 소통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도 "기자회견을 했는지 안 했는지, 또는 '박 대통령이 댓글과 에스엔에스(SNS)까지 모두 본다'는 식의 말은 '소통'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지나치게 개인화하고 형해화(유명무실하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박수받았던 일만 내세워 '소통했다'고 우기는 건 곤란하다. 서복경 연구위원은 "사회엔 여러 성격의 결사체가 존재하고 이들의 의견을 공식·비공식적으로 수렴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있다. 현 정부의 문제는 이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반응하고, 또 갈등을 조정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불통' 논란도 거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대통령이 당장 철도노조 파업이나 역사교과서 논란, 밀양 송전탑 문제, 의료 상업화·민영화 갈등 등과 관련해 충분한 소통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박 대통령과 그 주변을 둘러싼 의사결정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한 새누리당 의원의 말이다. "중요 사안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이를 책임질 만한 그룹이 없다. 현안에 대한 의견이나 이견을 전달할 통로도 없다. 그러니 한 번 대통령의 뜻이 정해지면 바꾸거나 조정하지 않는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건 커뮤니케이션에서 치명적인 약점 아닌가?"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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