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불법'에 불복한 朴 아무것도 하지 않은 1년

박송이 기자 2013. 12. 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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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이면 18대 대선이 치러진 지 정확히 1년이다. 하지만 정치 시계는 2012년 12월 19일에 멈춰 서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간데 없이 정치권은 대선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모두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가 부른 자업자득이다.

임기 첫해,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단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첫해 무엇을 했을까. 박근혜 대통령 집권 1년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정책의 타당성이나 정책의 성패 여부를 떠나 각 대통령은 집권 1년차에 자신만의 정책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다. 집권 첫해에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임기 내내 그 정부만의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여의도 당사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박민규 기자

복지 공약 등 잇단 후퇴 속 '정책공백'

정책을 입안하고 예산을 받아내는 데만 1~2년이 걸린다. 집권 1년차 때 각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기틀을 잡아놓지 않으면 임기 내내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전임 정부와는 달리 새롭게 시작한 정책이 아무것도 없다. 복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지만, 기초노령연금 논란으로 공약 후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이를 책임지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는 전임 정부와 차별화된 정책으로 전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정책적 리더십'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집권 1년차였다는 것이다.

12월 19일이면 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지 정확히 1년이다. 하지만 정치 시계는 1년 전인 2012년 12월 19일에 머물러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별다른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정책 공백' 상황이 지난 1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은 1년을 꼬박 대선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 문제는 의혹만 눈덩이처럼 증폭된 채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권 1년차에 정책은 간 데 없고, 후유증만 남았다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에서 온다는 지적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장은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문제는 여야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대통령에게 막중한 권한이 있는 우리나라 정치제도에서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선불법 털고 갈 기회 계속 놓쳐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 1년 동안 정치권의 태풍이었던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문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고 있는 격'이라고 빗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문제를 털어내고 갈 수 있는 몇 번의 시점이 있었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이를 실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전선은 꼬여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문제가 전임 정부 때의 일이라면 박 대통령은 이를 진작에 단호하게 털고 가야 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런 맥락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검' 수용은 전임 정부의 문제를 과감하게 털고 갔던 하나의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대북송금 특검 수용은 당시 노무현 정부에는 전 정부인 김대중 정부와 각을 세우는 정책이라 큰 부담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야권의 지속적인 공세를 끊어내고 새 정부의 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의 일이라고 선을 명확하게 긋는다면 관련 책임자들에게 강도 높게 책임을 물어야 했다. 이렇게 1년 동안 문제를 끌기 전에 조치를 취하고 해결했어야 했다"고 말하며 "역대 정권에서 전 정권의 문제가 있으면 이와 선긋기를 했고, 노무현 정부 때의 대북송금 특검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아 해명은 없이 의혹만 키워오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12월 12일 민주통합당 의원들과 당원들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오피스텔 앞을 지키고 있다. 민주당은 국정원 요원들이 문재인 대선후보에 대해 악성댓글을 조직적으로 달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김문석 기자

은폐ㆍ축소 드러나면 예측불허 상황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의혹에 근거한 음모론만 무성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원전비리 문제 등에 칼끝을 겨누는 시늉은 했지만, 그야말로 시늉에 불과한 것이었다"며 "살짝 건드리기만 하고 핵심은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전임 정부의 문제를 털고 가기보다는 '종북 프레임'으로 국면을 전환하거나, 검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의혹을 더욱 부풀려 왔다. 그러다보니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문제와 연관되었다는 의혹을 사는 인물들이 현 정권의 핵심에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전 정부의 책임자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대선을 사흘 앞두고 국정원 선거개입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발표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넘어 남재준 국정원장까지 의혹의 대상자로 더해졌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제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이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문제를 물타기하려는 국면전환용이라는 지적이다. 'NLL 포기 발언 논란'은 단기적으로는 국면을 전환하는 데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의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버렸다. 현 정권의 핵심인 남재준 국정원장까지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는 정황이 만들어진 셈이다. .

특히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자식 논란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문제는 더 복잡하게 꼬여갔다. 채 전 검찰총장의 사퇴를 계기로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문제는 국정원 개혁에서 검찰 개혁으로까지 전선이 넓어지게 됐기 때문이다. 한상익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물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국정원 개혁'만이 전선이었다. 그러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정권에 밉보여 물러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여기서 검찰 개혁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것"이라며 "결국 남재준 국정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걸고 넘어지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끊어내면서 박근혜 정부가 이 일을 풀어나가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채 전 검찰총장이 이끄는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검찰 조사 결과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정도로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었던 시기를 또 한 차례 놓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남재준 국정원장을 넘어 여기에 더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까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책임자 처벌 등 탈출구 서둘러야

특히 채 전 검찰총장 문제는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문제가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주장에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파괴력도 크다. 채 전 검찰총장을 청와대가 '찍어내기' 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이는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고 했다는 문제로 비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2월 3일 청와대 조모 행정관이 서초구청 조이제 국장에게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로 지목된 채모군의 개인정보 열람 요청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검찰의 수사를 방해한 것이 아니냐는 야권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 1219 끝이 시작이다 > 를 발간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의 불법 대선공작과 사실규명을 막기 위해 사법방해 행위들이 저질러지고 있다. 이는 과거 독재정권도 하지 못했던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시발은 도청사건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일'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거짓말 때문"이라고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역설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김진태 검찰총장이 이끄는 수사팀이 수사를 잘해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12월 6일 여야가 국회 국가정보원 개혁특별위원회 인선을 마무리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갈 전망이지만, 정치권에서는 특위에서 쉽게 결론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특위가 국정원 문제를 매듭짓고 결론을 내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특위에서는 특검문제를 계속 제기해 나갈 것이고, 검찰수사가 미진하게 나올 경우에는 특검 이야기는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다"며 "특히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낮은 상황에서 쉽게 특검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문제를 털고 갈 수 있는 마지막 시기는 내년 1월에 있을 예정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1심 공판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때 검찰이 국민 여론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고, 박근혜 정부에서 강도 높게 책임자 처벌을 한다면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도 일단락될 수 있다는 것이다.

18대 대선이 치러진 지 1년이 지났지만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문제는 의혹만 더욱 커지고 국민들의 피로감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막다른 상황에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 최고지도자가 갖춰야 할 리더십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문제를 막다른 상황으로 더 몰고 가고 있고, 결국 그것이 박근혜 정부마저 막다른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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