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당선자 대선장정 1년7개월>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기자 = "생각해 보면 참 기적같은 일이 많았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전 막판 기자들과 동승한 유세버스안에서창밖을 보며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대선행보를 시작한 지난해 5월 이후 19일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1년 7개월여의 대선 대장정은 대역전과 끝없는 좌절, 극적인 반전으로 점철된 한편의 드라마였다.

노 당선자가 처음 대선 예비주자군에 이름이 들어간 것은 지난해 1월 각 신문의신년 특집호였지만, 본격적 대선 행보는 그해 4월 해양수산부 장관에서 물러나와 5월 여의도 금강빌딩에 `자치경영연구원"이라는 대선캠프를 가동하면서 부터다.

당시 염동연 이강철 유종필 특보와 안희정 이광재 등 386 참모 몇명과 시작한그의 대선장정은 당시 쇄신파동에 휩싸여 있던 민주당내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노 당선자는 당시 부동의 1위였던 이인제(李仁濟) 의원에 이어 2위로 군소후보군 중 선두로 치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당시 여론조사 지지율은 여전히 10%미만에 머물렀다.

그러나 민주당이 내홍을 거듭하다 이듬해 1월 초 국민경선 도입을 골자로한 당쇄신안을 완성, 본격적으로 경선국면이 시작되면서 노 당선자는 `단 하나의 필승카드 노무현"을 내세우며 이른바 `영남후보론"으로 안정적인 지지율 10% 대로 들어섰다.

그는 경선전이 본격화된 2월 선두인 이인제 후보를 겨냥해 `정체성 시비"를 본격적으로 제기했고, 이것이 기성 민주당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20% 대의 지지율로 진입하기 시작했으며 제주경선을 거치면서 3월 14일 실시된 한 일간지와 방송사 공동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이기는 후보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광주 민심을 움직이며 3월16일 광주경선에서 `광주의 선택"으로 불리는경선 1위로 올라서면서 `노풍"은 본격화 됐다.

경선기간 라이벌 이인제 후보의 끊임없는 색깔론과 음모론 시비 속에서도 노풍은 더욱 기세를 올리면서 경선이 끝난 4월 말 노 당선자의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후보 가운데 사상 최고치인 60%를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민주세력 대통합론을 내세운 그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면담 등이악재로 작용하면서 빠지기 시작한 지지율은 6.13 지방선거와 8.8 재보선을 거쳐 20%대로 추락했다.

지지율 하락은 당내에서 그의 입지를 더욱 악화시켰고 그의 후보 자리를 위협하는 당내 중진들의 발언이 잇따르면서 재경선 논란이 가열됐다.

결정적으로 9월에 들어 김원길(金元吉) 박상규(朴尙奎) 김영배(金令培) 의원 등친노로 분류됐던 중진들이 후보 단일화를 내세우며 그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서그의 지지율은 급기야 10%대로 떨어졌고,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대선 출마 의사를표면화하던 9월 말 시점에는 지지율이 14%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10월 17일 김민석(金民錫) 전 의원의 탈당이 그에게 급반전의 기회가 됐다. 노 당선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김민석은 거기를 왜 갔을까"라고 말했다.

`386 세대"의 대표주자였던 그의 탈당은 형식논리상 당연히 노 당선자에게는 악재였다. 그러나 그의 탈당 이후 하루 500여만원에 그쳤던 후원금은 1억원을 훌쩍 넘겼고 지지율도 20%대를 회복했다.

답보 상태였던 그의 지지율은 지난달 10일 `여론조사 단일화안" 전격 수용을 계기로 20% 중반에 들어섰고, 25일 우여곡절끝에 여론조사에서 승리한 이후 35% 안팎의 지지율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선 뒤 주요 여론조사에서 한번도 1위자리를 내주지 않고 선거 막판까지 달려왔다.

하지만 선거전 마지막날인 18일 저녁 10시 정몽준 대표의 전격적인 `지지철회"는 그에게 날아든 최후의 결정타 처럼 보였다.

유세장에서 다음 대통형 후보를 거론한 그의 말을 빌미삼아 정 대표는 심야에자택을 찾아간 노 당선자를 만나주지도 않았고, 행운의 여신은 끝내 그를 외면하는듯 했다.

그러나 정 대표의 명분없는 지지철회는 오히려 노 당선자 지지층의 결속을 결집시켰고 결국 그는 마지막날까지 천당과 지옥을 오가다 19일 제16대 대통령에 극적으로 당선됐다.

kn0209@yna.co.kr(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