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나꼼수' 미국 동행기

공지영 2011. 12. 2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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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정인 UC 버클리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주진우 기자는 딱딱한 의자 두 개를 붙여놓고는 뻗어버렸다. 김어준 총수는 벽에 머리를 기댄 채 멍한 눈동자를 반쯤 감고 있었다. 늘 무언가를 먹고 있던 김용민 교수는 앞에 놓인 김밥을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공연까지 합치면 벌써 거의 한 달이 넘는 강행군을 계속하면서 이 정도는 괜찮다고 입버릇처럼 하던 소리도 그들의 입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가방에서 마지막 남은 공진단을 꺼내 그들에게 내밀었다. 뉴욕 공연 이래로 괜찮아 누나 먹어 하던 소리도 사라졌다. 김 총수가 그걸 입에 넣고 씹으며 중얼거렸다. 힘들다, 정말 힘들다. 가슴이 철렁했다. 더 이상 그들에게 해줄 말도 없었고 줄 수 있는 것도 바닥나버렸다. 나 역시 지쳐 있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공연 시작 직전인 오후 네 시까지 커피 말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버클리 측에서 김밥을 준비했으나 사인회 인파가 몰려들어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만일 내 책을 파는 사인회였다면 단호하게 사람들을 거부했을 것이었다. 그들 역시 돈 받고 하는 일이었다면 주최 측에 불평을 늘어놓으며 그들 특유의 반항하는 몸짓으로 거부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마치 빅브러더에게 하듯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순종했다. 일어나 나아가 청중이 내미는 책에 사인을 했고 그들의 카메라 앞에서 웃었다. 그렇게 돌아온 무대 대기실. '나꼼'들은 더 할 수 없이 지쳐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 조명은 밝혀졌고 쇼는 시작되었다. 김어준의 목소리가 무대 위로 울려퍼졌다.

"오늘이 마지막 일정인데요 저희가 좀비 상태입니다. 우리들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약간 설명을 드리면… 새벽 6시쯤에 누군가 우리를 막 깨웁니다. 그러면 끌려 나와서 공항에 가요. 그리고 저희를 어딘가로 끌고 갑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또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저희를 끌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서 막 먹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큰 빌딩에 넣어놓고 사인을 시킵니다. 그러다가 강연을 하고 끝나고 나서 다시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끌고 가요. 뒤풀이라고. 다 끝나면 새벽 2~3시가 되죠. 잠시 들어가서 눈을 붙이려고 하면 다시 6시쯤 누군가가 깨웁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나옵니다."

관중들이 와와 웃었다. "아무래도 이번 미국 공연은 가카의 작품인 것 같습니다. 우리를 죽이려고, 과로사시키려고."

객석에서 이번에는 더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느 때처럼 무대 뒤에서 나는 그들을 살폈다. 주 기자가 다리를 덜덜거리며 떨기 시작했고 김 총수의 목소리가 조금 커지기 시작했다. 김용민은 성대모사 메모를 보고 있었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관중들의 웃음소리, 환호소리가 저들에게 다시 생기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제 더도 덜도 아니고 무대에 올라 관중의 환호를 먹고 사는 부류의 사람들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글쎄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김 총수의 말대로 최고령 아이돌? 영웅들? 혹은 챔피언들? 혹은….

ⓒ나꼼수 제공 < 나는 꼼수다 > 미국 순회공연(위)은 남미는 물론 하와이와 상하이에서까지 온 청중으로 가득 찼다.

이 이상한 현상 혹은 폭풍은 미국에서 시작된 일은 전혀 아니었다. 서울, 온라인 사이트에 티켓을 오픈했을 때, 마치 유명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가 그러하듯 5분 만에 표가 매진된 일은 기획자 탁현민의 입부터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혹자는 모처에서 표를 통째로 샀다는 의혹을 펼칠 정도였다. 이후 각 지방의 공연장마다 티켓은 5분 내로 다 매진되었고, 모든 위대한 역사의 한 장면이 그렇듯 카이스트의 부당한 공연장 거부에 항의하기 위해 우연히 그리고 즉흥적으로 기획된 대전 야외 공연에는 영하의 날씨에 3만명이 운집함으로써 그들이 핵폭탄급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날치기 FTA가 비준된 일주일 후 여의도 공연에 10만명을 동원한 '나꼼수'는 이제 그 자체로 네 명의 수소폭탄급 영웅들을 거느린 권력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놀랍게 온 세상에 입증해버렸다.

맨해튼에서 나꼼수 가방 메고 다니는 여성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내에서의 일이었다. 미국 땅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주민들의 사정이 존재한다. 솔직히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그리 절박할 것도 많지는 않다. 자원 봉사를 나온 뉴욕의 한 교민 여성은 맨해튼 거리에서 늘 나꼼수 가방을 메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했다.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그리워서라고 했다. 이 가방을 보고 알은체를 한다면 그들은 그러니까 비로소 마음껏 정부를 비판하고 깔깔거리며 네 명의 아이돌을 흠숭해도 되는 것이니 말이다. 설마 그렇게까지요? 내가 묻자 다른 교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여기 1970년대 반공주의가 아직도 만연한 곳이에요. 모두 보수라고요." 그러나 뉴욕의 공연장이 바로 매진되고 표를 더 달라는 아우성이 빗발치고 그들이 도착하던 첫날부터 공항에 플래카드를 든 환영 인파가 나오자 그들은 그들이 입을 다물고 가방을 메고 다니며 접선을 시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상황은 보스턴의 하버드 공연, 워싱턴 DC의 존스홉킨스 공연, LA의 공연 그리고 버클리까지 이어졌다. 어머니와 아들이, 남편과 아내가,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함께 공연을 보러 왔고, 6시간이나 7시간 차를 몰아 여기 왔다는 말은 엄살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14시간 차를 몬 것이 최고 기록이었고 남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기록은 하와이와 상하이에서까지 왔다는 청중에 의해 깨져버렸다. 1년에 한두 번뿐인 휴가를 내어 나온 자원봉사자들, 휴가를 다 써버린 탓에 병가를 낸 자원봉사자들의 사연은 우리를 숙연케 했다. 그들은 각각 우리를 맡아 운전을 하고 일용품을 날랐으며 여성들은 김용민 교수가 다 소화할 수 없는 음식들을 날랐다. 김 총수는 너무 많은 약을 받아 대체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는 처지가 되었으며 주진우 기자 앞에는 선물이 너무 쌓여 사인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박근혜가 다니러 오면 3000석의 교회가 다 찼다는 LA에서 1500석의 사람들이 꽉 찬 것은 김대중의 미국 망명 후 처음이라고 했다. 그날 나꼼수 회원들이 사인을 받으려는 긴 줄 앞에서 사인을 해주는 동안 상대적으로 한산한 내 앞으로 노부인이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나꼼수 제공 < 나는 꼼수다 > 출연진(왼쪽부터 김용민·김어준·주진우)은 미국에서 살인적인 공연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저분들에게 꼭 전해주세요. 미국에 온 지 30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진보를 외치는 것 처음 보았어요. 그리고 엄마 품에 안겨 온 아기부터 나 같은 노인네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 모인 것도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한 가지 더, 정치를 이야기하기 위해 모인 곳에서 이렇게 웃어보기는 처음이라는 거…. 그 이야길 꼭 전해주세요. 이건 역사입니다. 새로운 역사였어요. 꼭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노부인은 총총히 사라져갔고 피곤한 내 몸속으로 무언가가 울컥, 했다. 가카가, 그들 말대로 가카가 이렇듯 큰일을 하신 것이다. 자기 먹을 것과 자기 일자리만 생각하고 오직 내 새끼 좋은 학교 보낼 일만 생각하는 소시민들이, 그러나 정작 힘겹게 혹은 우리가 꼭 동의하지 않았다 해도 어렵게 이루어온 인권과 민주를 빼앗겼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가카가 밝혀내신 것이다. 자기 돈을 들이고 자기 휴가를 양보하고 자기 시간을 내어 이들을 응원하러 달려온 것이다. 나는 새삼 여기에 있는 젊지도 않고 못생긴 (죄송하다 그러나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세 사람에 정봉주 의원을 더해보았다. 직원들 월급날이 돌아오는 것을 늘 걱정하던 말만 그럴듯한 총수, 윗사람 맘에 안 드는 말 했다고 방송에서 잘린, 그래서 지금은 명절 휴일 새벽에 남들 방송하기 싫어하는 시간에만 땜질로 뛰는 방송인인 김용민, 소송에 시달리는, 검찰에 불려가고 진술하고 (이것이 말과는 달리 얼마나 신경을 말리는 일인지 당해본 사람은 안다. 그런데 그게 매주 밀려온다. 이제는 돈까지 달라고 한다. 주진우, 그가 말라가는 건 너무 당연하다) 그리하여 잠시도 몸과 마음이 쉬지 못하는 가난한 주간지 기자, 그리고 끈 떨어진 국회의원 정봉주…. 이들은 영웅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차라리 영웅이 되려면 나같이 총 판매부수 1000만 부를 앞둔 인기 작가나, 이곳 미국으로 발령난 지사장들, 교수님들 그리고 유수한 대학의 유학생들이 더 쉬울 것이었다.

사이비 종교 같다며 비아냥거리는 이들에게

그러나 가카가 꼼수를 드러냈을 때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이들이 홀연하고 쿨한 얼굴로 일어나 '쫄지마, 씨바!'라는 민족적 해학의 용어로 말을 걸어왔다. 나는 지친 표정을 거두고 내게 다가온 사람에게 미소를 띄워주었다. 솔직히 사인보다 공연보다 그게 더 힘든 일이었고 기실 우리를 계속 지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내가, 저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혜택받았던 내가 저들과 함께 대중에게 웃어주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에게서 저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건… 그냥 그러면 안 될 거 같았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도 나와 같은 심정임을 나는 안다. 그렇지 않다면 미치지 않고서야 휴가 아니 병가를 내고 6~7시간도 아니고 14시간 차를 몰아 이곳에 오고 비행기를 타고 이리로 모여들지는 못할 테니까. 우리는 그들의 말에 동의하고 그들을 믿고 사랑하고 그들 곁에 머물며 그들과 함께 외치기 위해 여기 왔던 것이다.

그것이 사이비 종교 같다고 비아냥거리는 이들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그 정도 열정도 없이 가난한 우리가 모든 금력과 권력을 가진 저들을 이길 수가 있겠느냐고, 너희는 언제 진짜 사이비만큼이라도 뜨거워보았느냐고. 그리하여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약한 자의 작은 잘못을 빌미삼아 곤죽이 되도록 짓밟고 우리 모두를 정치적 피로에 휩싸이게 하고 우리들의 존재를 먹고살기 위해 정의 도덕 같은 건 아예 모르는 버러지처럼 느끼게 한 그들을 향해 말하기 위해 여기 왔다는 것을 나는 더욱 선명히 깨닫게 되었다. 지난 3년간 너희는 우리를 쫄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너희들이 쫄 차례다…. 그리고 멋진 이 추임새를 덧붙여야 한다. 씨바!

공지영(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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