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실수]오세훈의 사퇴

박영환·이서화 기자 2011. 12. 25. 22: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리수.. '안철수 현상' 등 정치권 후폭풍

지난 7월15일 오세훈 서울시장(50)은 시 간부, 기자들과 영화를 단체관람한 뒤 기분 좋게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했다. 그는 "올해 사주가 좋아서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건배사도 "34(주민투표율 유효기준 33.3%를 넘기자)" "우리가 남이가"라고 선창했다. 그즈음 여당에선 주민투표 지원 의사를 밝혔다. 한 기자가 "밖에서 보면 서울시가 타이태닉호에 올라 있는데 시청 내부는 잔칫집"이라고 말했다.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달포쯤 지난 8월26일, 주민투표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한 오 전 시장은 지금 심신이 아픈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러 어려움에 봉착한 여권에선 그를 향한 곱잖은 시선이 쏟아졌다. 스스로는 디스크 협착이 생겨 보행이 어렵다고 한다. 일주일에 3번 정도 물리치료를 하고 집에서 걷기 치료 중이다. 두문불출하면서, 최근 가족과 한 차례 연극 구경을 간 게 외출의 전부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2011년 정치·사회를 요동치게 한 대형 사건이었다. 정당정치가 불신받으면서 '안철수 현상'이 일어났고, 여야는 '복지 전쟁'에 들어갔다. 그 뇌관에 불을 댕긴 것은 '보수의 아이콘'을 자처하며 '복지 포퓰리즘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오세훈 전 시장이었다. 여권에선 주민투표를 '오세훈의 실수'로 매김한다.

오 전 시장은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1월10일 서울시청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망국적 무상 쓰나미를 막아내지 못하면 국가 백년대계가 흔들린다"며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제안했다.

그는 1월18일 서울시의회 무상급식 조례안에 대해 무효 소송을 제기하고 주민투표 계획을 밀어붙였다. 보수단체들은 6월16일 무상급식 주민투표 청구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그는 여론조사 예상 투표율이 투표함 개봉 기준(33.3%)에 못 미치자 8월12일 차기 대선후보 불출마를 선언했다. 1차 승부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투표일인 8월24일 해외순방이 잡히자 "투표는 권리이자 의무"라며 미리 부재자투표를 하며 간접 지원했다.

오 전 시장은 투표를 사흘 앞둔 21일 다시 시청 기자회견장에 섰다.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어 책임을 다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두 번째 카드였다.

여권은 발칵 뒤집혔다. 후폭풍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운명의 8월24일 투표율은 25.7%에 그쳤다. 일부를 제외하면 전 지역에서 밀렸고, 오 전 시장은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한 패자가 됐다. 그의 '오판'은 내년 총·대선을 앞둔 정치판에 변화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안철수 현상'과 시민운동가 박원순 변호사(55)의 서울시장 당선은 오 전 시장의 오판이 가져온 메가톤급 후폭풍이다. 오 전 시장은 여권의 만류에도 8월26일 사퇴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이 10월26일로 잡혔다. 전국을 돌며 '청춘콘서트' 형식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하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49)의 '출마 검토설'이 나오면서 서울시장 선거는 폭풍으로 바뀌었다.

지지율 50%대의 안 원장은 5%대이던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이사에게 "아무 조건도 없다. 제가 출마 안 하겠다"며 서울시장 범야권 시민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박원순 시민후보는 야권 통합경선에서 민주당 박영선 후보(51)를 눌렀고, 본선에서도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48)를 득표율 53.5% 대 46.2%로 눌렀다. 2040세대가 만든 변화였고, '정당정치의 패배'로 규정됐다.

한나라당은 패닉 속에 지도부 재편의 길을 걷게 됐다. 25.7%의 투표율을 기록한 무상급식 투표를 "사실상 승리"라고 규정했던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57)는 여당발 쇄신론의 쓰나미에 떠밀려 연말에 물러났다. 지난 19일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가 당 구하기에 나섰다. 차기 대선에서 부동의 1위이던 박 위원장은 9월 이후 안철수 원장과의 여론조사 맞대결에서 2위로 밀려 있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포퓰리즘 복지를 막겠다던 '오세훈의 승부'는 복지 확대를 정치권의 대세로 만드는 역설적 결과도 가져왔다.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매년 33조원씩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무상급식·보육·의료 및 반값 등록금이란 파격적 안도 내놨다.

한나라당도 급변했다. 주민투표 패배 후인 지난 9월2일 남경필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46)은 "복지 포퓰리즘과 전쟁을 하자는 노선으로는 앞으로 대선·총선에서 미래가 없다"고 반박했다. 시민의 보편적 복지 기대가 확인되면서 여권의 복지 포퓰리즘 전쟁은 힘을 잃고 방향을 튼 것이다.

주민투표 이전에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64)가 저출산 해결을 위해 '0~4세 무상보육'을 제안했을 때 당내에는 "개인적 의견"이라는 반응이 대세였다. 재·보선 패배 후 0~4세에 대한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대세를 이뤘다.

이 대통령도 지난달 29일 "0~5세 아이들 보육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자세로 기획재정부 장관이 당과 협의해 대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오세훈의 날갯짓이 나라의 흐름을 180도 돌려놓고, 정치·사회 전반에 나비효과를 일으킨 2011년이다.

< 박영환·이서화 기자 yhpark@kyunghyang.com >

[경향블로그]

[김한조의 '이꼴라쥬'] 5세 훈이 때문에...

[뉴스라운드업] 무상급식 논란 진행과정

[뉴스인물 따라잡기] 오세훈 전 서울시장

[고영득의 '타박타박 일본'] 오세훈과 '망언 종결자'

[서민의 '기생충같은 이야기'] 맥락과 띨띨 사이

[구정은의 '오들오들매거진'] 대통령과 급식

[대중문화웹진 POPPOP!!] 김태원의 음악과 인생, 그리고 아내

경향신문 '오늘의 핫뉴스'

▶ 배우 윤은혜, 세입자에 승소

▶ "북이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는 한국"

▶ '정봉주' 들썩… 공지영 "나도 구속하라"

▶ 女탤런트, 땅콩보트 사고로 억대 배상

▶ 北, 김정일 장례식에 女마술사 초대… 왜?

모바일 경향 [New 아이폰 App 다운받기!]| 공식 SNS 계정 [경향 트위터][미투데이][페이스북][세상과 경향의 소통 Khross]-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