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폭로 'MB정부의 굴욕', 너그러운 보수언론?

2011. 6. 3. 16: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뉴스분석] 진퇴양난 고민에 빠진 조중동…남남갈등 조장 대북정책 흔들기 우려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자]

"제발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내 놓자고 하면서 제발 좀 양보해 달라고 애걸했다."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지난 1일 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 형식을 통해 공개한 남북 '비밀접촉' 내용은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탄생한 '보수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굴욕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안보는 잘할 것"이라는 믿음은 지난해 천안함 침몰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를 거치면서 '의문부호'가 던져진 바 있다.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듯 보였지만, 이번 북한의 '남북 비밀접촉' 공개라는 돌발변수가 터지면서 다시 이명박 정부의 안보 능력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명박 대통령. ©노컷뉴스

천안함, 연평도 사건 처리 과정에서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공언과 달리 북한에게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게 알려진 것은 보수진영 입장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수의 영혼'에 상처를 입힌 사건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과 없이는 북한과 대화를 않겠다더니 회담을 구걸한 모양새는 보수언론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장면이다. 보수언론이 이명박 정부의 어설프고 자존심 상하는 행보를 비판할 법도 한데 웬일인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의 모습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보다는 엄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조선일보는 6월 2일자 < 북 상대할 때 政治계산 뒤섞다간 뒤통수 맞는다 > 라는 사설에서 "이명박 정부는 이번 일을 통해 국내 정치적 계산을 뒤섞으면 오히려 그들의 장난에 놀아나게 될 위험이 있다는 걸 깊이 느껴야 마땅하다"고 조언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정부는 대북 접근법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면서 "남북 간 협상의 필요성은 절실하지만 잘못된 협상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 정책에 있어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보수언론은 비판의 칼날을 세우지 않는 모습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언론은 이번 사건을 북한의 '남남갈등' 조장 의도로 바라보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남남 갈등을 증폭시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흔들어 보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한·미 간 긴밀한 대북정책 공조를 깨트려 보겠다는 생각, 남쪽의 정치적 혼란을 촉발하겠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일보는 6월 3일자 사설에서 "정부는 북한의 남북 이면 접촉 폭로에는 국제사회로 하여금 한국이 북한에 대해 겉으론 원칙론을 말하면서 뒤론 거래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게 만들려는 공작적 의도가 섞여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목할 포인트는 '뒤로 거래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국제사회의 의심스러운 눈길'을 북한의 '공작적 의도'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전략에 휘말려들지 않겠다는 '자기 명분'을 내세웠지만, 언론의 기본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대목이다.

조선일보 6월 3일자 사설.

북한의 '언론플레이'를 경계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현주소라는 '팩트'는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번 사태로 나타난 정부의 대북정책 현주소와 문제점, 과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도, 전략도, 경험도 없는 3무 정권인 이명박 정권이 남북문제를 망치고 있다. 정상회담 추진에 관한 북측의 폭로와 이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은 남과 북 간의 접촉이 시작된 이후 가장 큰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한편으로 비밀접촉을 통해 정상회담을 구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붕괴론을 공공연히 주장하며 냉전적 대결정책을 펴는 이명박 정권의 표리부동이 결국 국민 자존심의 상처와 국제적 망신으로 귀결된 것이다. 통탄스러운 일"이라고 우려했다.

보수언론이 급한 불은 끄자는 심정으로 이명박 정부 엄호에 나섰지만,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어설픈 대북정책'은 보수진영 쪽에 고민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안보문제에 대한 보수정권의 역량에 기대감을 가지고 싶어도 아마추어 냄새가 물씬 나는 어설픈 행동으로 망신살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보수성향 정당인 자유선진당은 6월 2일 논평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심한 정부를 질타하자니 북한의 술수에 놀아나는 꼴이 된다. 음흉한 북한을 규탄하자니 북한에 속아 넘어간 정부가 밉살맞다. 분통 터지는 이번 폭로전은 신뢰를 상실한 MB정부가 자초한 일이다.…나흘 후면 호국선열을 기리는 현충일이다. 어찌 호국선열을 차마 뵙겠는가? MB정부는 임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오늘의 수모를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