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에 허덕이는 '노무현 형제'들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2011. 5.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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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5일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관에서 시민들이 영정 앞에 촛불을 밝혀 넋을 기리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 있는 자신의 고향 마을 뒷산 봉화산 부엉이바위 꼭대기에서 몸을 던졌다. 지난 5월14일 < 시사저널 > 취재진은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은 봉하마을에 찾아갔다. 노란 바람개비로 장식된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봉하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가장 먼저 노란색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봉하마을 입구에 위치한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 소유의 건물. ⓒ시사저널 윤성호

이 노란 건물 안에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한쪽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편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원래 이 건물은 '노사모'의 사무국 건물로 쓰이고 있다가 최근 봉하마을 방문객들을 위한 편의 시설로 개조되었다. 그곳에서 기자는 어딘지 낯익은 노년 여성을 만났다. 바로 노 전 대통령의 둘째누나 노영옥씨(73)였다. 그는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들과 악수를 하거나 사진을 찍느라 무척 분주한 모습이었다.

영옥씨는 "지금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나를 붙들며 눈물을 흘린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이렇게 대통령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생각해 웬만하면 봉하마을에 와 있는다"라고 근황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는 보이지 않았다. 노사모 관계자들은 "건평씨는 지난해 8·15 특사로 출소한 이후 거의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듯하다"라고 전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옥씨와 건평씨의 생활은 현재 매우 궁핍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주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형님과 누님은 권양숙 여사와도 거의 교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튼 전직 대통령의 형제들이 이렇게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잘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실제 영옥씨는 현재 월 100만원 정도에 불과한 생활비로 혼자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겨울의 추위는 70대 노인에게는 더욱 혹독했다. 연료를 살 돈을 아끼기 위해 나무 땔감으로 혹한기를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정한 수입이 없다 보니 매달 공과금을 연체해서 납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영옥씨는 "아들의 사업이 외부적인 일 때문에 잘 풀리지 않아서 두 딸이 생활비를 보태준다. 이 역시도 일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이같은 영옥씨의 어려운 사정이 경남 김해시의 한 지역신문에 실려 화제가 된 바 있다. '진영신문'의 박원철 대표는 "노영옥 여사님 댁에 찾아간 날 우연히 팔소매 부분에 구멍이 난 낡은 옷을 입고 계신 것을 발견했다. 소박한 삶을 살고 계신 것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올렸는데, 이 기사가 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랭킹 뉴스 1위에 오르는 등 네티즌들의 호응이 상당했다"라고 밝혔다.

권양숙 여사와는 왕래 자주 안 해

노 전 대통령의 둘째누나 노영옥씨. ⓒ시사저널 윤성호

영옥씨와 자주 왕래하는, 조카뻘 되는 한 친척은 "심지어 지금 고모님(영옥씨)댁 천장에서 물이 새기까지 한다. 스티로폼으로 막아두었는데 '어느' 언론에서 찾아오면 또 '으리으리한 저택'으로 몰아갈지도 모르겠다"라고 넌지시 불만 섞인 말을 꺼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에 고모님이 밖에 나가도 대통령의 가족인지 아무도 몰랐다. 당시 고모님은 김해의 17평짜리 아파트에서 사셨는데 청와대에서 우편물이 와도 경비조차 대통령 누나라서 그런 우편물이 온다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 누가 대통령의 누님이 그런 조그마한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나"라고 덧붙였다.

현재 영옥씨가 살고 있는 집은 경남 김해시 생림면에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과는 10km 정도 떨어져 있다. 차가 없기 때문에 이 길을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고 다닌다. 그는 힘겹게 봉하마을을 찾을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하던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영옥씨는 "대통령이 고향에 내려오면 우리 형제들 모두 함께 오순도순 살자고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다"라고 말하고는 한동안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나마 건강상의 문제와 사소한 오해 등으로 인해 올케인 권여사와도 거의 교류를 끊다시피 한 채 지내고 있다고 한다.

봉하마을에서 접한 안타까운 사연은 영옥씨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다. 봉하마을의 주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 역시 상당한 빚을 안고 지내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증언했다. 건평씨는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 매각 과정에 개입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 2009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과 추징금 3억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후 창원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해 오다가 지난해 8월 석방되었다. 곧바로 봉하마을로 돌아온 그는 현재까지 거의 외부 활동 없이 노 전 대통령의 추모 사업만 간접적으로 도우며 지내고 있다.

영옥씨는 "그(노건평)는 동생(노무현)이 정치를 할 때부터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지금도 여전하다. 옛 노사모 사무국 건물을 추모객들의 편의를 위해 계속 제공해주고 있다. 현재 그는 경제적으로 사정이 좀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평소 건평씨와 왕래를 하며 지낸다는 한 지인은 "요즘 건평씨는 가능한 한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동네에서 막걸리 몇 잔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것 이외에는 별로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듣자 하니 안고 있는 빚도 상당하다고 한다.

지금 돈벌이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그는 "노건평씨는 3년 동안이나 노사모 사무국 건물을 무상으로 제공해주었다. 건물 임대료는 물론이고 전기세도 받은 적이 없었다. 현재 이 건물을 봉하마을 추모객들을 위한 편의 시설로 이용 중이다. 하지만 노씨의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조만간 이 건물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들었다"라고 귀띔했다.

기자는 봉하마을 현지 지인들을 통해 건평씨와의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그로부터 "곧 노무현 대통령의 2주기이고 언론과는 접촉하고 싶지 않다"라는 답변을 전해 들었다. 건평씨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언론의 집중 포격을 맞은 터라 그로 인한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듯했다.

한편 권양숙 여사 역시 사저에 머무르며 간혹 비서진들을 통해 마을 주민들과 간접적으로 소통할 뿐, 거의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모측 역시 "유족들과 함께 서거 2주년 행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권여사는 이 행사를 함께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난 지금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작 봉하마을을 지키는 노 전 대통령 가족들의 모습은 쓸쓸한 풍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현주 기자 / cho@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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